항목 ID | GC02700570 |
---|---|
한자 | 海州吳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문백면 계산리|백곡면 성대리 |
집필자 | 강민식 |
세거지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
---|---|
집성촌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백곡면 성대리 |
입향시기/연도 | 조선 전기 |
성씨시조 | 오현보 |
입향시조 | 오유종 |
[정의]
오현보를 시조로 하고, 오유종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연원]
해주오씨(海州吳氏)의 시조 오현보(吳賢輔)는 모든 오씨의 도시조인 오첨(吳瞻)의 24세손이며, 중시조인 문양공(文襄公) 오연총(吳延寵)의 6세손이다. 그는 1216년(고종 3) 두 형제 오현좌(吳賢佐)·오현필(吳賢弼)과 함께 거란군 토평에 공을 세워 해주군(海州君)에 봉해지고 해주오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러나 해주오씨는 고려시대 검교군기소감(檢校軍器少監)을 지낸 오종인(吳宗寅)을 1세조로 하는 파와 역시 고려시대에 검교군기감사(檢校軍器監事)를 지낸 오인유(吳仁裕)를 1세조로 하는 두 파가 있다.
해주오씨는 오씨 14본 중에서 가장 번성하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84명, 상신 2명, 대제학 3명, 호당 3명, 청백리 1명, 공신 3명, 장신 2명을 배출하였는데, 특히 인조반정(仁祖反正) 뒤 중앙 정계에 진출하면서 여러 대에 걸쳐 많은 현신을 배출하였다. 해주오씨는 특히 오윤겸(吳允謙)과 오달제(吳達濟) 등이 유명한데, 오윤겸은 인조반정 후 서인이 노서(老西)·소서(少西)로 분열될 때 노서의 영수가 되어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오달제는 척화삼학사(斥和三學士)로 유명한데,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들어 화의를 반대하였고, 후에 심양(瀋陽)에 끌려가 윤집(尹集)·홍익한(洪翼漢) 등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입향경위]
조선 전기에 중군사정(中軍司正) 오유종(吳有從) 형제가 경기도 용인에서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반지마을로 옮겨왔다.
[현황]
오덕창(吳德昌)은 1667년(현종 8)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참의(禮曹參議)를 역임하였다. 오이헌(吳以憲)[1624~1708]은 오대남(吳大男)의 증손으로 1649년(인조 27) 문과 급제 후 지중추부사(知中樞副事)에 이르렀다. 오수경(吳守經)은 1699년(숙종 25)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정랑(禮曹正郞)과 순천도호부사를 역임하였고 청백리로 이름났다. 200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진천군 관내에 거주하는 해주오씨는 257가구 742명으로 나타났다. 주요 세거지는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수곡마을로 1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백곡면 성대리 성대마을에도 50여 가구 중 해주오씨가 진주강씨와 함께 대성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