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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544
한자 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집필자 강민식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에 세거하고 있는 유력 성씨들의 촌락.

[개설]

집성촌은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집성촌은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조선 초기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17세기 이후 집중적으로 형성되었다. 17세기 이후 적장자 중심으로의 상속제도 변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보급, 예학(禮學)의 발달, 종법적 가족제도의 수용 등이 집성촌 형성을 가속화시킨 주된 원인이 되었다.

집성촌은 생활공동체로서 동일 조상에 대한 제사, 마을 운영과 관련된 대동계·동계(洞契)·동약(洞約)의 조직 및 관리, 문중 서원과 사당의 건립 등을 공동으로 수행한다. 종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집성촌은 혈족의 존속과 사회경제적 특권의 유지를 도모하면서 지역 내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

[토성]

진천군의 성씨 내력을 알 수 있는 최초의 자료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이다. 진천현의 토성(土姓)으로 한(韓)·임(林)·송(宋)·심(沈)·유(庾)·미(彌)·고(高)·양(梁)·하(河)·장(張) 등 10개 성씨가 있다. 진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볼 수 있다. 먼저 『세종실록지리지』에 보이는 10개 성씨를 중심으로 진천군의 대표적인 세거성씨와 집성촌을 보면 아래와 같다.

청주를 단일본으로 하는 청주한씨(淸州韓氏)는 조선 중기 한광윤(韓光胤)이 이주한 이래 진천군 진천읍 장관리 석화동을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진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의 하나인 임씨는 달리 진천의 별호를 따서 상산임씨(常山林氏)라고도 하는데,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는 진천의 대표적인 성씨와 집성촌이다. 조선 중기의 인물인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진천송씨(鎭川宋氏)의 시조이다. 진천송씨진천군 덕산면 두촌리  진천 송인 묘소와 사당을 중심으로 800년 가까이 세거하고 있다.

진천을 본관으로 하는 심씨는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지 않다. 다만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청송심씨가 진천에 다수 세거하고 있다. 청송심씨는 명종 때 도사와 정언을 역임한 심령(沈苓)이 경기 파주에서 진천군 이월면 삼용리로 이주한 이래 400여 년 동안 세거하고 있다. 유씨(庾氏)는 고려 개국공신 유금필(庾黔弼)을 시조로 한다. 시조의 5대손인 유록숭무송부원군에 봉해지면서 분관하여 무송유씨를 이루고 있다. 무송유씨는 진천군 진천읍 가산리에 4호가 있을 뿐이다.

미씨(彌氏)는 현재까지 그 연원과 후손을 찾을 수 없다. 고씨는 현재 제주고씨에서 분파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진천군에도 80여 호 정도가 거주하고 있으나 이주 시기나 연원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다. 양씨는 양성지의 장남 양원(梁瑗)이 진천군 진천읍 장관리로 이주한 이래 400여 년 동안 세거하고 있으나 인구는 많지 않다. 진천에 거주하는 하씨는 대부분 진주(晋州)를 본관으로 하고 있으나, 이주 시기와 연원은 명확하지 않다. 장씨는 인동장씨(仁同張氏)가 대부분이나 그 연원은 자세하지 않다.

[내성]

이밖에도 조선 전기부터 진천에 세거하던 성씨로는 강릉김씨(江陵金氏)청주이씨(淸州李氏), 한산이씨, 의령남씨(宜寧南氏) 등이 있다. 진천군 백곡면 석현리와 이월면 사곡리 사지마을은 강릉김씨의 집성촌이다. 고려 말 조선 초에 김사혁(金斯革)이 아들 김천익(金天益)과 함께 진천군 백곡면 석현리로 옮겨오면서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이주한 지 600년으로, 김천익의 아들 김덕숭(金德崇)의 효행이 널리 알려져 있다.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문백면 사양리를 중심으로 청주이씨가 널리 세거하고 있다. 고려 말에 문간공(文簡公) 이정(李挺)이 이주한 이래 유력 성씨로 자리하였는데, 아들 이거이(李居易)가 중앙 정계에서 활약하면서 크게 두드러졌다. 상계리 멱수마을에 세워진 사패비는 이 지역 일대를 국가로부터 받은 영지로 당시 청주이씨의 위상을 보여준다.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사지마을은 한산이씨의 집성촌으로 유명하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둘째 아들 이종학(李鍾學)이 조선 초기에 입향한 이래 600년 가까이 세거하고 있다. 백원서원에 배향된 이여(李畬)가 잘 알려져 있다. 조선 초 세종 때의 명신인 남지(南智)의 묘소와 신도비는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 안능마을에 위치한다. 이 마을을 중심으로 후손들이 500여 년 전부터 세거했던 것으로 보인다. 의령남씨는 좌의정 남지를 비롯, 1728년(영조 4) 무신란 때 순절한 남연년(南延年)이 잘 알려져 있다.

또 현재의 인구수에 많은 수를 차지하는 김해김씨(金海金氏)전주최씨(全州崔氏), 영일정씨, 경주이씨(慶州李氏), 안동김씨(安東金氏), 평산신씨(平山申氏), 양성이씨(陽城李氏), 문화유씨(文化柳氏), 평양조씨, 여흥민씨(驪興閔氏), 경주정씨(慶州鄭氏)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진천군 진천읍 송두리성석리, 문백면 사양리·봉죽리김해김씨의 집성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김해김씨김유신의 부친 김서현(金舒鉉)이 진천의 옛 이름인 만노군 태수로 부임하면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리지 등에 보이지 않다가 조선 영조 때 김우혁(金宇赫)·김우광(金宇桄) 형제가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진천읍 송두리로 이주하면서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고종 때에도 김현구·김현린 형제가 진천군 덕산면 산수리에 이주한 이래 문백면 봉죽리진천읍 성석리에 세거하고 있다.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와 초평면 죽정리는 전주최씨의 집성촌이다. 조선 개국공신 최유경(崔有慶)이 만년에 진천군 초평면 죽정리로 이주한 이래 그 후손들이 500여 년 동안 세거하고 있다. 특히 많은 효자를 배출한 성씨로 이름났는데, 최유경·최사흥(崔士興)·최기(崔基)·최주민(崔柱旻)·최극성(崔克誠)·최종운(崔宗運)·최제두(崔齊斗) 등 많은 효자를 배출하였다. 또 대제학과 영의정을 역임한 최석정(崔錫鼎)진천군 초평면 금곡리에 은거하면서 많은 후학을 배출하였는데 그곳에 지산서원(芝山書院)이 건립되었다.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진천읍 지암리, 백곡면 사송리 일대는 송강(松江) 정철(鄭澈)로 널리 알려진 연일정씨의 집성촌이다. 연일정씨는 1658년(효종 9) 정철의 손자 정양(鄭瀁)이 진천현감을 역임한 것을 인연으로 하여 1665년(현종 6) 정철의 묘소가 경기 고양으로부터 이곳으로 이장되어 오면서 크게 번창한 것으로 보인다.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경주이씨의 집성촌이다. 조선 명종이대건(李大建)·이시발(李時發)·이시득(李時得) 3부자가 입향한 이래 크게 번성한 명문 세거성씨이다. 초평면 용정리에는 이대건·이시발 부자의 신도비와 묘소, 완위각터 등 관련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하곤을 비롯, 구한말의 이상설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장관리안동김씨 집성촌이다. 흔히 구안동김씨라 부르는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다. 고려 말 충신 김사렴(金士廉)의 6대손 감찰 김인(金隣)이 내거하여 세거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김효건(金孝騫)과 1728년 무신란 때 의병을 일으킨 김천주·김천장·김성옥·김성추 등이 유명하다.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평산신씨의 세거지로 유명하다. 달리 ‘논실신씨’로 불릴 만큼 누대에 걸쳐 세거하고 있는데 문희공(文僖公)의 5대손 신잡(申磼)이 낙향하여 백원서원을 세우고 후학을 양성하면서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백원서원 터를 비롯, 노은영당신화국·신잡·신경희의 묘소가 자리한다. 여러 대에 걸쳐 이름난 무신을 배출하였고 영당 입구에는 진천 신헌 고가가 보존되어 있다.

진천군 덕산면 두촌리는 임진왜란 당시 가리포첨사로 이순신 장군과 함께 노량해전에서 순절한 이영남(李英男) 장군의 묘소가 자리한다. 이곳을 중심으로 양성이씨가 400여 년 이상 세거하고 있다. 일부는 덕산면 산수리에도 거주하고 있다. 진천군 진천읍 행정리유차달(柳車達)을 시조로 하고, 유헌민(柳獻民)이 임진왜란 때 부친을 모시고 피난 온 이래 정착하여 세거성씨를 이루었다.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덕산면 석장리는 평양조씨의 집성촌이다. 조춘(趙春)을 시조로 하고, 성종 때 청산군수를 역임한 조맹손(趙孟孫)과 고려에 절의를 지킨 조손(趙損)이 이주하면서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진천군 문백면 평사리 평사마을여흥민씨의 집성촌이다. 여흥민씨는 민칭도(閔稱道)를 시조로 하고 문순공(文順公) 민적(閔頔)의 후손들이 주로 이주하여 세거하고 있다. 진천군 덕산면 산수리경주정씨의 집성촌이다. 조선 중종 때 첨지중추부사 정방광(鄭邦絖)이 이주한 이래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학행과 효행으로 이름난 정봉남(鄭鳳男)이 있다.

[대표적 집성촌]

진천 지역의 대표적인 집성촌을 보면 다음과 같다. 상산임씨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진천송씨진천군 덕산면 두촌리, 강릉김씨진천군 백곡면 석현리이월면 사곡리, 청주이씨진천군 진천읍 상계리문백면 사양리, 한산이씨는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의령남씨진천군 문백면 평산리, 김해김씨진천군 진천읍 송두리·성석리문백면 사양리·봉죽리, 전주최씨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와 초평면 죽정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연일정씨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진천읍 지암리백곡면 사송리, 경주이씨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안동김씨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장관리, 평산신씨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양성이씨진천군 덕산면 두촌리, 문화유씨진천군 진천읍 행정리, 평양조씨는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덕산면 석장리, 여흥민씨진천군 문백면 평사리, 경주정씨진천군 덕산면 산수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3.22 인명 오자 수정 정나통(鄭那統) -> 정방광(鄭邦絖)
이용자 의견
김** 김사렴(金士廉)의 6대손 감찰 김인(金隣)이 를
김사렴(金士廉)의 증손자 감찰 김인(金隣)이 로 수정 바랍니다.
2015.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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