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5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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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李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이월면 중산리 |
집필자 | 강민식 |
세거지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문백면 사양리|이월면 중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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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문백면 사양리|이월면 중산리 |
입향시기/연도 | 고려 후기 |
성씨시조 | 이능희 |
입향시조 | 이정 |
[정의]
이능희를 시조로 하고, 이정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연원]
청주이씨(淸州李氏)의 시조 이능희(李能希)는 고려 개국공신으로 벼슬이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에 이르렀다. 시조 이하 대대로 청주(淸州)에 세거(世居)하였고, 또 10세손 이계감(李季瑊)이 고려조에서 낭성군(琅城郡)[옛 청주, 지금의 청원군 낭성]에 봉해졌기 때문에 본관을 청주로 하였다.
이계감의 아우 이계성(李季成)이 판추밀원원사(判樞密院事)로 보은군(報恩君)에 봉해져서, 그의 후손들이 본관을 보은으로 하여 분적했다가, 최근에 청주로 일원화하고 보은파라 일컫고 있다. 청주이씨는 고려 중기부터 조선 초기까지 번성하였으나, 중기 이후 퇴조 현상을 보여 조선시대 벼슬 경력은 상신 1명, 공신 2명, 문과 급제자로 9명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진천의 입향조가 되는 문간공(文簡公) 이정(李挺)은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 공민왕 때 형부상서를 지냈다. 이정의 아들 공절공(恭節公) 이거인(李居仁)은 우왕 때 경상도도순문사(慶尙道都巡問使)를 지내고, 김저(金佇)의 옥사에 연루되어 한때 유배되었다가 판개성부사를 거쳐 검교좌정승(檢校左政丞)에 오르고 청성백(淸城伯)에 봉해졌다. 이거인의 아우 문도공(文度公) 이거이(李居易)는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 태종 때 영사평부사(領司平府事)로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봉해지고, 한때 진천에 은거했다가 다시 기용되어 영의정에 올랐다.
[입향경위]
이정이 고려 말기인 1330년(충숙왕 17)에 원나라의 압력으로 조정 내부가 문란해질 때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로 내주(來住)한 이래 600여 년간 문무관을 배출하였다. 이정의 아들 이거이가 중앙 정계로 진출하였으며, 그의 후손이 문백면 사양리와 진천읍 상계리에 세거지를 형성하였다.
[현황]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멱수마을에 위치한 사패비는 청주이씨가 조선 초기 이 지역을 중심으로 영지를 하사받아 지금까지 후손들이 세거하는 바탕이 되었다. 『상산지(常山誌)』[1932] 인물에는 학행과 문장이 뛰어난 이승종(李承宗)이 보인다. 200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진천군 관내에 거주하는 청주이씨는 125가구 327명으로 나타났다. 현재는 이월면 중산리 중복마을에 30여 가구가 대성을 이루고 살고 있다.
[관련유적]
세거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관련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는 고려 중기 청백리인 이공승(李公升)의 영정을 봉안한 사양영당(思陽影堂)과 진천 이정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입향조 진천 이정 묘소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94호로 지정되었다. 진천읍 상계리에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95호 진천 이거이 묘소가 자리잡고 있으며, 진천읍 상계리 멱수마을에 이거이의 아들 이저(李佇)와 이백강(李伯剛)의 공적을 기려 태종이 청주이씨 문중에 하사한 사패비와 그의 후손 청주이씨 이승종 등의 사적을 적은 비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