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7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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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承宗 |
영어음역 | Lee Seungjong |
이칭/별칭 | 효백(孝伯),서암처사(西巖處士)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산45-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연정 |
성격 | 효자|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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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
성별 | 남 |
생년 | 1574년 |
본관 | 청주(淸州) |
대표관직 | 좌의정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학자이자 효자.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효백(孝伯), 호는 서암처사(西巖處士). 청허당(淸虛當) 이거이(李居易)의 8세손이다. 『청주이씨족보(淸州李氏族譜)』에 따르면 태사공 이능희(李能希) 이후에 본관을 청주로 정하였다고 한다.
[활동사항]
이승종(李承宗)[1574~?]은 지금의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행과 문장이 탁월하였으며, 좌의정(左議政)을 지냈다. 어버이를 섬김에 지극한 효도를 하였고, 제사를 받들 때 정성을 다하였으며, 자제들을 가르침에 법도가 있었고, 궁한 친척들을 구휼하여 주었으며 있고 없음을 따지지 아니하였다.
나라의 부름을 자주 받았으나 광해군 대의 어지러운 조정을 만나 나아가지 않았다. 부모 봉양에 최선을 다하고 상을 당해서는 6년간 시묘하였다. 만년에는 상산의 남쪽 길상동(吉祥洞)에 은거하면서 아정(雅亭)을 지은 뒤 꽃을 심고 가꾸는 생활로 소요하며 시와 술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다가 인조반정 후 별세하였다. 그 문 아래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감히 방자하고 오만하지 않았으며, 말하기를 “여기는 이처사(李處士)가 거처하는 곳이다”라고 하였으니 사람들에게 중하게 보인 것이 대개 이와 같았다.
[상훈과 추모]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산45-1번지에 청주이씨 사패비 및 비석군이 있는데, 이승종의 사적비와 유허비도 함께 있다. 사패비는 조선 개국공신으로 현달한 이거이 및 그의 아들 이애(李薆)와 이백강(李伯剛)의 공적을 기려 태종이 청주이씨 문중에 사패지(賜牌地)를 하사하였는데, 이를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이승종 사적비에는 사적을 기록하였고, 유허비는 ‘서암처사이승종유허비(西巖處士李承宗遺墟碑)’라 써 있다. 유허비는 방형 대석 위에 높이 128㎝, 너비 67㎝, 두께 29㎝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가첨석(加檐石)[지붕돌]을 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