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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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豊山洪氏 |
영어의미역 | Pungsan Ho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호계리 |
집필자 | 강민식 |
세거지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호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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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연도 | 18세기 |
성씨시조 | 홍지경(洪之慶) |
입향시조 | 홍양호(洪良浩) |
[정의]
홍지경을 시조로 하고 홍양호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연원]
풍산홍씨(豊山洪氏) 시조 홍지경(洪之慶)은 1242년(고종 29)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국학직학(國學直學)을 지낸 뒤 풍산(豊山)에 정착하였다. 이에 후손들이 풍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조선시대 들어 풍산홍씨는 왕비 1명, 상신(相臣) 5명, 대제학 3명, 공신 1명, 장신(將臣) 3명, 문과 급제자 129명을 배출하였으며, 특히 헌종 때에는 세도 가문으로 이름을 떨쳤다.
풍산홍씨를 중흥시킨 인물은 문경공(文敬公) 홍이상(洪履詳)이다.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한 뒤 광해군 때 사헌부대사헌에 이르렀으며, 여섯 아들도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여섯 아들에게서 11명의 손자를 보았고, 6세손에 이르기까지는 자손이 140명으로 번창하였다.
홍이상의 여섯 아들 가운데 특히 넷째 아들 홍영(洪霙)의 후손이 가장 번창했다. 홍영의 아들 홍주원(洪柱元)은 선조의 부마가 되었고, 홍주원의 큰아들 홍만용(洪萬容)은 숙종 때 예조판서를 지냈으며, 홍만용의 손자 홍현보(洪鉉輔)도 영조 때 예조판서를 지냈다. 홍주원의 동생 홍주국의 아들 홍만선은 숙종 때의 실학자로 실학 발전의 선구적 인물이 되었다.
홍현보의 아들 홍봉한(洪鳳漢)은 영조 때 영의정을 지냈고, 딸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부인으로 정조를 낳은 혜경궁(恵慶宮) 홍씨이다. 홍봉한의 동생 홍인한(洪麟漢)은 형조를 제외한 5조의 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이어 좌의정을 지냈다.
진천군 입향조 홍양호(洪良浩)는 영조 때의 뛰어난 학자요 문장가로 벼슬이 대제학에 이르렀다. 홍양호의 5세손 홍승헌(洪承憲)[?~1915]은 1875년(고종 12) 문과에 급제한 뒤 벼슬이 참판에 이르렀다. 일제의 침탈이 심해지자 고향인 문백면 사양리 호계마을로 낙향하여 은둔하였고, 1910년 국권을 빼앗기자 서간도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사망 소식을 들은 고향 유지들이 시신을 거두어 고향 선영에 안장했다.
[입향경위]
조선 영조 때 홍양호가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 호계마을에 정착한 뒤 후손들이 180여 년간 세거하고 있다.
[현황]
2000년 인구 조사 통계에 따르면 진천에 세거하고 있는 풍산홍씨는 총 20가구 69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