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926 |
---|---|
한자 | 金正文 |
영어음역 | Kim Jeongm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동현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서 활동한 동편제 판소리 명창.
[개설]
김정문은 송만갑의 제자로 동편제 판소리를 이은 사람이다. 김정문은 서편제 판소리를 접하고 난 뒤 동편제 판소리의 남성적인 맛에 서편제 판소리의 아기자기한 여성적 특성을 가미하였다.
이로 인해 김정문의 소리는 대중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찍부터 협률사에 참여하였으며, 상경하여 창극에도 관여하였다. 김정문은 송흥록과 송광록 이후 남원을 대표하는 동편제 판소리 명창이다.
[활동사항]
김정문은 남원시 주천면 태생으로 알려져 있지만, 호적에는 김정문의 원호적지가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로 되어 있다. 또한 1921년 전라북도 임실군 성수면 도인리로 이사를 하였고, 1931년에는 남원시 주천면 주천리로 이사했다고 전해진다. 이로 보아 남원이 김정문의 출생지가 아닐 가능성은 있으나, 남원에서 활동한 사람으로서 남원을 대표하는 명창임에는 틀림이 없다.
김정문은 유성준의 생질로서 일찍이 외삼촌인 유성준에게 소리를 배웠으나, 소리를 잘 받지 못한다고 북채로 얻어맞은 후에는 유성준을 떠나 송만갑의 고수 노릇을 하면서 소리를 배웠다.
송만갑의 협률사를 따라다니다가 통영에서 서편제 명창 김채만의 소리를 듣고 반하여 김채만에게 소리를 배웠다. 이후 김정문은 보다 대중화된 소리를 하여 송만갑보다 오히려 잘한다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
김정문은 1930년 음반 회사 시에론(Chieron)에서 SP 열두 장짜리 「춘향전 전집」을 내기도 했는데, 이는 전집물로서는 이른 시기에 나온 것이라 김정문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남원권번에서 소리 선생을 하였으며, 창극도 잘하였다.
1935년 서울 관훈동에서 사망하였는데, 이때 신고한 이는 동거자 엄금주이다. 김정문의 시신은 서울에서부터 남원까지 운구를 해서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김정문은 「흥보가」를 잘 불렀으며, 박록주, 박초월, 강도근, 이소희, 장혜순 등의 제자를 두었는데, 그중에서도 박록주와 강도근이 김정문의 「흥보가」를 전승하였다.
[저술 및 작품]
「박타령」 상, 하 (콜럼비아(Columbia), 1929), 「춘향과 어사 재봉」 상, 하 (니포노폰(Nipponophone), 1930), 단가「홍문연」(시에론(Chieron), 1934), 「춘향전 전집」 1-12 (시에론(Chieron), 1934) 등의 작품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