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30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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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原極樂庵石造無量音聲王佛坐像-腹藏遺物一括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양림길 58-43[어현동 37-15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태건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3년 11월 15일 - 남원 극락암 석조무량음성왕불좌상 및 복장유물 일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23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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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남원 극락암 석조무량음성왕불좌상 및 복장유물 일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제작 시기/일시 | 1702년 - 남원 극락암 석조무량음성왕불좌상 및 복장유물 일괄 제작 |
현 소장처 | 극락암 - 전라북도 남원시 양림길 58-43[어현동 37-151] |
복장 유물 소장처 | 극락암 - 전라북도 남원시 양림길 58-43[어현동 37-151] |
성격 | 불상|유물 |
재질 | 석조|종이 |
크기(높이) | 41.0㎝[높이|29.0㎝[무릎 폭] |
소유자 | 극락암 |
관리자 | 극락암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어현동 극락암에 봉안된 불상 및 복장 유물.
[개설]
남원 극락암 석조무량음성왕불좌상 및 복장 유물 일괄은 무량음성왕불 좌상 내부에서 발원문이 발견되어 원래 봉안처와 제작 시기 및 조각에 관여했던 승려를 알 수 있다. 불상의 원봉안처는 순천 동리산 대흥사(大興寺)이고 1702년(숙종 28) 조각승 수일(守日)이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무량음성왕불은 53불을 구성하는 부처님의 존명 중 48번째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남원 극락암 석조무량음성왕불좌상은 53불로 봉안되기 위해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원봉안처인 대흥사는 절터만이 남아 있어, 대흥사가 폐사되면서 53불이 주변 사찰들로 분산되어 봉안된 것으로 추정된다.
53불의 명호가 실린 경전은 『불설관약왕상이보살경(佛說觀藥王上二菩薩經)』, 『관허공장보살경(觀虛空藏菩薩經)』, 『삼겁삼천불연기(三劫三千佛緣起)』, 『자비도장참법(慈悲道場懺法)』이 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53불과 관련한 기록으로는 『자비도장참법집해(慈悲道場懺法集解)』와 1725년(영조 1) 그려진 「송광사 오십삼불도(松廣寺五十三佛圖)」, 1728년(영조 4) 경기 안성 칠장사의 「천불조오십삼불명호비(千佛祖五十三佛名號碑)」, 경상북도 안동 봉정사의 「오십삼불계청경판(五十三佛啓請經板)」 등이다.
이들 기록에 53불의 존상 순서는 대부분 일치하나 일부 존명의 경우 문헌 자료들 사이에 순서가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인다. 무량음성왕불의 경우도 앞서 언급된 문헌 기록에서는 모두 48번째 명호로 언급되지만, 『자비도량참법집해』에서는 47번째로 나타난다. 따라서 53불의 존명의 순서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판본이 당시 조선 불교계에 유통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극락암 석조 무량음성왕불과 동일한 발원문이 나타나는 불상이 있는 사찰은 전라남도 보성군 용연사, 제주시 정방사 등이다. 용연사에는 구류손불과 대혜력왕불이, 정방사에는 비사부불이 있다. 구류손불과 비사부불의 경우 각각 과거칠불의 세 번째와 네 번째에 해당하는 존명이고, 대혜력왕불은 46번째에 해당하는 존명이다. 이를 통해 1702년 순천 대흥사의 불상 조성은 과거칠불과 53불이 함께 조성되는 불사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발원문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들 존상들과 유사한 형태적 특징을 보이는 존상들이 남원 용담사 1구, 서울 성북구 자인사 1구, 전라남도 구례군 사성암에 32구가 전한다. 2013년 11월 15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2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남원 극락암 석조무량음성왕불좌상 및 복장 유물 일괄 중 석조 무량음성왕불의 높이는 41㎝, 무릎 폭은 20㎝이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자세를 하고 있다. 왼손은 바닥을 위로 향한 채 무릎 위에 올려놓았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두상은 역사다리꼴 형태로 촘촘하게 조각된 나발들 사이로 원통형 정상 계주와 반원형 중앙 계주를 표현하였다. 미간에서 코끝까지 이어지는 원만한 곡선으로 코를 두툼하게 조각하였고, 눈초리는 그 끝은 살짝 올린 형태로 정면을 응시하게 표현하였다. 양 입술 끝은 살짝 올려 미소를 머금은 듯한 형태이지만, 불상의 전반적인 얼굴 생김새에서는 감정의 표현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무량음성왕불은 승각기, 복견의, 대의로 표현되는 전형적인 조선 후기 착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대의와 복견의 옷 주름은 음각 선으로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고, 가슴을 가로지르는 승각기는 연꽃을 연상케 하는 형태로 가지런히 접혀 있다. 하반신의 대의 자락은 오른쪽 발목에서 크게 2개의 주름이 대칭을 이루며 부챗살처럼 펼쳐진 형태로 조각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남원 극락암 석조무량음성왕불좌상 및 복장 유물 일괄 중 석조 무량음성왕불을 조성한 수일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까지 활동한 조각승이다. 현재까지 수일이 제작한 불상은 1675년(숙종 1)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있는 소재사 명부전의 석조 시왕상 일괄, 1676년 경상북도 정도군의 적천사 명부전 석조 지장보살 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1702년(숙종 28) 순천 대흥사 과거칠불 및 53불과 1703년 경상남도 거제시의 세진암 목조 아미타 삼존 불좌상 등이다.
수일이 조성한 불상들 중 과거칠불 및 53불은 17세기 후반 전라남도 순천 지역을 중심으로 빈번하게 나타나는 53불의 조성을 잘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사례이다. 현재 순천 조계산에 위치한 송광사와 선암사의 경우 각각 1684년(숙종 10)과 1702년 53불이 조성된 것이 확인되고, 순천과 인접한 여수 흥국사에서도 1689년(숙종 15) 53불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순천 대흥사의 1702년 과거칠불 및 53불 조성은 조계산과 그 인근을 중심으로 활동한 승려 문중 집단의 새로운 신앙 형태가 과거칠불 및 53불의 조성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귀중한 지표로서 의의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