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6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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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文擧墓碑 |
영어의미역 | Grave Monument of Yun Munge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현정 |
성격 | 묘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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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1781년 |
관련인물 | 윤문거|윤증|윤동섬|윤광소 |
재질 | 오석 |
높이 | 122㎝ |
너비 | 56㎝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윤문거의 묘비.
[개설]
윤문거의 자는 여망이고, 호는 석호이며, 본관은 파평으로 팔송 윤황의 아들이다. 김집의 문인으로 1630년(인조 8) 생원이 되었고, 1633년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검열, 설서, 낭관, 정언, 부수찬, 부교리 등을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청과의 화의가 그릇됨을 주장하고 끝까지 싸워 나라를 지킬 것을 주장하였다. 윤문거는 1639년 부친상을 당하였는데, 관직에 나가지 말라는 부친의 유언에 따라 고향에 내려와 학문에 전념하였다. 사후에 좌찬성에 추증하고 충경(忠敬)이라고 시호를 내렸으며, 노강서원에 배향하였다.
[건립경위]
윤문거가 죽고 6년이 지난 후 묘 앞에 돌을 세우고 윤증이 비문을 지었는데, 1781년(정조 5)에 이르러 미처 기재하지 못했던 것을 윤광소(尹光紹)가 추가하여 기록하여 세웠다.
[위치]
광석면소재지인 신당리에서 지방도 8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5.5㎞ 거리에 득윤교가 있다. 다리를 건너 200m 정도 가면 남쪽으로 뻗은 도로가 있는데, 이 길로 1.5㎞ 거리에 산정말이 있고, 마을 뒷산의 동향 사면에 윤문거 묘소가 있다.
[형태]
윤문거 묘비는 묘전에 팔작지붕 모양의 지붕돌[가첨석]을 갖추었고, 1781년(정조 5)에 윤증(尹拯)이 비문을 짓고, 윤동섬(尹東暹)이 썼으며, 윤광소가 전서를 써서 세웠다. 풍화로 인해 마모가 되긴 했으나, 비교적 잘 보존된 편이다. 비의 높이는 122㎝이고, 너비는 56㎝이다.
[금석문]
묘비에는 ‘유명조선국이조참판증의정부좌찬성충경공석호윤선생지묘(有明朝鮮國吏曹參判贈議政府左贊成忠敬公石湖尹先生之墓)’, ‘정부인증정경부인평창이씨부좌(貞夫人贈貞敬夫人平昌李氏祔左)라고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묘비의 음기를 통해 윤문거의 행적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또한 비문 글씨를 쓴 윤동섬은 충주 달천사비, 덕원 전사기적비, 덕흥의 적지기적비, 충주의 임경업 충렬사비 등에 많은 금석문을 남기는 등 글씨를 잘 쓰는 사람으로 유명하였는데, 윤문거의 묘비도 윤동섬이 남긴 금석문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