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6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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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江都忠烈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덕호 |
[정의]
경기도 포천시에 거주하는 개인이 소장한, 1701년 김창협이 저술한 강화도 순절 충신 기록.
[개설]
강화도 충렬사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의 침입으로 한양과 강화도가 함락될 때 순절했던 우의정 김상용과 이상길·이시직·황선신·권순장·김익희 등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642년(인조 20) 강화 유생 정건(鄭楗) 등의 발의로 창건되었고, 1658년(효종 9)에 사액을 받았다.
[저자]
김창협(金昌協)[1651~1708]은 조선 후기의 문신·문인으로 문장과 글씨에 능했던 당대 문장가이다. 본관은 안동으로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이다. 당대의 최고 명문가 출신으로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자이며, 아버지 김수항(金壽恒)과 형 김창집(金昌集)이 모두 영의정을 지냈다. 육창(六昌)으로 불리는 6형제 중에서 특히 김창협의 문(文)과 동생 김창흡(金昌翕)의 시는 당대에 이미 명망이 높았다.
1669년(현종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682년(숙종 8) 증광 문과에 전시 장원으로 급제하여 병조좌랑·사헌부 지평·동부승지·대사성·대사간 등을 지냈다. 아버지 김수항과 작은아버지 김수흥(金壽興)은 노론의 핵심 인물로, 김창협이 청풍 부사로 있을 때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아버지가 진도에서 사사(賜死)되자 벼슬을 버리고 영평(永平)에 숨어 살았다. 1694년 갑술옥사 후 아버지의 누명이 벗겨져 호조 참의·대제학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했다. 24세 때 송시열을 찾아가 『소학(小學)』에 대해 토론했고 이이의 학통을 이었으나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는 호론(湖論)의 입장을 취했다.
전아하고 순정한 문체를 추구한 고문가(古文家)로 전대의 누습한 문기(文氣)를 씻었다고 김택영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숙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양주의 석실 서원, 영암의 녹동 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농암집』·『주자대전 차의문목(朱子大全箚疑問目)』·『오자수언(五子粹言)』·『이가 시선(二家詩選)』 등이 있고, 『강도 충렬록(江都忠烈錄)』·『문곡 연보(文谷年譜)』 등을 엮어 펴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형태/서지]
2권 1책의 필사본이다. 김창협이 편찬하여 1701년(숙종 27)에 간행했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등에 보관되어 있다.
[구성/내용]
『강도 충렬록』은 주로 강화 충렬사의 사우 건립과 사액 등에 관한 것이다. 건립 경위, 추향(追享) 사실, 청액소(請額疏) 및 사액시의 치제문(致祭文), 봉안 제문, 축문, 위차(位次), 제향 인물 각자에 대한 간단한 전기 형태로서의 행장이나 신도비명, 묘지명 그리고 이이명(李頤命)이 편찬한 「삼충신전(三忠臣傳)」, 김창협이 지은 「남문순의비기(南文殉義碑記)」, 권상하(權尙夏)가 지은 「충렬사순절비기(忠烈祠殉節碑記)」 등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강도 충렬록』은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서 순절한 인물들에 대한 전기, 순절 기록과 충렬사의 건립, 배향 절차 등 강화 전투에서 희생당한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