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7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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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淳墓-神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 716-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덕원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523년 - 박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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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 시기/일시 | 1589년 - 박순 묘 조성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589년 - 박순 사망 |
조성 시기/일시 | 1909년 - 박순 신도비 건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3년 - 박순 묘표 건립 |
현 소재지 | 박순 묘 및 신도비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 716-1[묘]|포천시 창수면 주원리 산210[신도비] |
성격 | 묘|신도비 |
양식 | 원형 봉분 |
관련 인물 | 박순(朴淳)[1523~1589] |
봉분 크기/묘역 면적 | 묘역 면적 약 66.12㎡[20평] |
[정의]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박순의 묘와 신도비.
[개설]
박순(朴淳)[1523~1589]의 자는 화숙(和叔)이고, 호는 사암(思菴)이며, 본관은 충주(忠州)이다. 나주(羅州)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우윤(右尹) 박우(朴祐)이고, 목사 박상(朴祥)의 조카이다. 어머니는 생원 김효정의 딸인 당악 김씨(棠岳 金氏)이고, 부인은 고덕부(高德符)의 딸인 개성 고씨(開城 高氏)이다. 후손은 딸이 한 명인데, 군수 이희간(李希幹)에게 출가하였다. 포천시 창수면 영평천에서 우거(寓居)하였다.
[위치]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에 있는 국도 37호선을 따라 청암 유원지 반대편에 있는 옥병교를 건너서 바로 주원 4리의 마을 회관 방향으로 직진하면 오른쪽 위에 옥병 서원이 있다. 박순 신도비는 옥병 서원 입구에 있으며, 여기에서 마을 안쪽으로 500m 정도 들어가면 박순 묘가 있다. 박순 묘 및 신도비의 주소지는 각각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 716-1번지와 창수면 주원리 산210번지이다.
[변천]
1589년 조성된 묘는 최근에 호석을 둘렀으며, 묘 오른쪽에는 1983년에 새롭게 건립한 묘표가 있다. 묘 앞에는 최근에 조성한 상석과 향로석, 장명등이 있다.
[형태]
약 66.12㎡[20평] 규모의 묘역에는 곡장이 둘러져 있으며, 곡장 안으로 오른쪽에 부인 개성 고씨 묘가 왼쪽에 박순 묘가 있다. 신도비는 옥병 서원의 홍살문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화강암 재질의 비좌와 옥개석, 대리석의 비신으로 이루어진 4면 비이다. 신도비는 총 높이 186㎝, 비좌 110×82×54㎝, 비신 64×185×33㎝, 옥개석 108×76×47㎝의 규모이다. 옥개석의 왼쪽 상단과 비신의 오른쪽 중단에 커다란 탄흔으로 박락이 있다.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11대 외손(外孫)인 이최수(李㝡秀)가 글씨를 썼으며, 10대 외손인 이승회(李承會)가 전액(篆額)을 하였다. 비의 건립 연대는 ‘개국 오일 팔년 기유 오월(開國五一八年己酉五月)’인 1909년(순종 3)이다.
신도비 옆에는 새로 건립한 비가 520×420㎝ 규모의 석주 난간 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귀부·비신·옥개석을 갖춘 4면 비이다. 신도비는 총 높이 470×880×680㎝, 비신 91×360×60㎝, 이수 96×90×67㎝의 규모이다. 비의 건립 연대는 ‘단기 4324년 신미 삼월 일’인 1991년이다.
[현황]
묘 앞에는 원래의 석물로 문인석과 장명등이 있는데,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박순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문신·학자로 말년에 영평에서 은거하였고,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에 묘가 있으며, 옥병 서원에 배향되어 있다. 박순은 유학자일 뿐만 아니라 뛰어난 문장가로서 옥병 서원 앞에 위치한 창옥병 암각문(蒼玉屛岩刻文)과도 관련이 깊다. 따라서 박순은 역사와 문학을 함께할 수 있는 포천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