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8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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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端午 |
이칭/별칭 | 수릿날, 술의일(戌衣日), 수뢰일(水瀨日), 천중절(天中節), 중오절(重午節), 단양(端陽)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집필자 | 김명우 |
[정의]
경기도 포천지역에서 음력 5월 5일에 지내는 명절 풍속.
[개설]
단오(端午) 는 양(陽)의 수가 겹치는 날로서 1년 중에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 하여 큰 명절로 여겨 왔다. 이를 수릿날, 술의일(戌衣日), 수뢰일(水瀨日), 천중절(天中節), 중오절(重午節), 단양(端陽) 등이라고도 한다. 단오의 단(端)은 첫 번째를 의미하고, 오(午)는 다섯[五]과 뜻이 통하기 때문에 단오는 초닷새를 말한다. 5월 5일은 3월 3일[삼짇날], 7월 7일[칠석], 9월 9일[중양절]처럼 양의 수가 겹치는 날, 즉 인간이 태양신을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날이라 하여 예로부터 중요하게 여겼다. 단오는 고려 시대에는 9대 명절에 속하였고, 조선 후기에 편찬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4대 절사(節祀)로 설날·한식·단오·추석을 꼽았다. 또한 1518년(중종 13)에는 단오를 설·추석과 함께 삼명일(三名日)로 일컫기도 하였다.
[연원 및 변천]
단오 는 중국 초나라 회왕(懷王) 때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당시 굴원(屈原)이라는 충신이 간신들의 모함을 받자 자신의 지조를 보이기 위하여 멱라수[汨羅水]에 투신자살하였는데, 그날이 5월 5일이었다. 그 후 사람들이 해마다 5월 5일이 되면 수뢰(水瀨)에 밥을 던지면서 굴원에게 제사를 지내게 되었고, 그의 혼을 건지기 위해 배 건너기 행사를 치렀다고 한다.
단오 를 수릿날이라고 부르게 된 유래는 『동국세시기』 5월조의 기록에 전한다. 기록에 따르면 이날 산에서 나는 수리취라는 나물을 뜯어 떡을 해 먹는데, 떡의 모양이 수레바퀴처럼 만들어졌기 때문에 ‘수리’란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또 수리란 고(高), 상(上), 신(神) 등을 의미하는 우리의 고어(古語)로 ‘신의 날’ 또는 ‘최고의 날’이란 뜻에서 불렸다고도 한다.
궁중에서는 신하들이 단오 부적을 올리면 대궐 내 각 건물의 기둥에 붙이고, 공조(工曹)와 지방에서 부채를 만들어 진상하면 임금은 이것을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민간에서는 단오 철에 새로 수확한 앵두를 사당에 올리고, 자손의 번창과 집안의 평안, 풍년 등을 기원하는 단오 고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또한 단오에는 지역마다 마을 수호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씨름이나 그네뛰기 등 민속놀이를 즐겼다. 지금까지 전승되는 가장 대표적인 행사로 강릉 단오제가 있으며, 1967년 국가 무형 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절차]
포천 지역에서도 단오에 여러 가지 풍습이 시행되었다. 우선 이날 수리취떡이나 인절미를 만들어 먹었다. 또 약쑥을 베어 단오 이슬을 맞게 해서 말려 두었다가 아기 낳은 산모의 몸을 씻기는 데 사용하였다. 익모초를 약으로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이는 더위 먹은 데 좋다고 한다. 단옷날 창포를 베어다가 삶아서 그 물에 머리를 감았던 것은 포천 지역에서도 일반적으로 행해진 풍습이다. 여성들은 창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는데, 이렇게 하면 머릿결이 윤기가 나고 잘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단옷날 새벽 상추 밭에 가서 상추 잎에 맺힌 이슬을 받아 분을 개어 얼굴에 바르면 버짐이 피지 않고 피부가 고와진다고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단오 에 그네를 타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어서, 초파일부터 그네를 매고 타던 것을 단옷날 줄을 끊고 더 이상 뛰지 않았다. 상추 이파리에서 받은 이슬에 분을 개어 얼굴에 바르면 피부가 뽀얗게 되고 버짐이 피지 않는다고 믿었다. 또한 단오가 지나면 농사일이 바빠지기 때문에 예전에는 머슴에게 옷을 한 벌 해서 입히고 하루를 쉬도록 하였다. 이러한 단오 관련 풍습은 급격한 근대화와 산업화의 진행으로 오늘날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