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044
한자 民俗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병찬

[정의]

경기도 포천지역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생활 풍속.

[개설]

민속은 한 문화권 내에서 다수가 향유하고 있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문화로 민중들이 자연적·역사적·사회적 환경에 대처하고 적응하는 지혜와 믿음으로 엮어낸 생활 양식이다. 포천 지역의 민속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데, 신앙·전설·풍속·생활 양식·관습·종교 의례·민요·속담 등이 이에 해당된다.

포천 지역은 지리적으로 서울과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고, 강원도와 접하고 있어 다양한 풍속이 정착되었다. 그러나 양반층의 문화나 풍속은 문자로 기록되어 보존되어 왔지만, 민중 일반의 민속은 그리 많이 보존되지 못하였다. 포천은 역사적으로 진한·백제·고구려·신라 등으로 판도가 바뀌어서 민속도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하여 강원도나 충청도의 풍속과 비슷한 점이 많으나 그중에서도 황해도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행사 민속, 민간 신앙, 세시 풍속, 민속놀이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포천의 행사 민속]

포천에서 현재 행해지는 행사 민속으로는 신년 해맞이 행사[7개 지역], 대보름 축제[고모리], 동홰제[기지리], 각종 시산제(始山祭)[등산회, 동창회, 동아리 모임] 등이 있다.

신년 해맞이 행사는 민속으로 분류하기는 애매하나 새로운 민속이랄까 축제 형식으로 읍·면·동 단위의 신년 해맞이 행사가 7개 지역에서 치러지고 있다. 여기에는 기관장, 시 의원, 각종 위원회 회원, 부녀회 회원 및 마을 주민들이 150여 명에서 많게는 400여 명 정도가 참여한다. 해맞이 행사는 대개 1월 1일 7시부터 진행되는데, 가정과 마을의 평화와 번영과 안녕을 위한 기원제를 올리고 일출에 맞추어 만세를 부른다. 그 후에는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떡국을 함께 먹고 헤어진다.

고모리 대보름 축제 행사는 소흘읍민들의 축제로 다양하게 진행된다. 기지리 동홰제는 경기도 민속 경연 대회에 출전한 바 있다. 각종의 동호회나 친목계가 조직되어 대개 신년 첫째 주일을 기해서 시산제를 올리고 있다.

이밖에 일상적인 생활 의례로 출산 의례(出産儀禮)와 관례(冠禮), 성년례, 차례, 수연례(壽宴禮), 관혼상제례(冠婚喪祭禮) 등이 행해지는데, 포천 지역만의 특성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다만 포천의 장례에서는 포천만의 독특한 상여 소리인 「노정가」와 「회심곡」이 불린다.

[포천의 민간 신앙]

포천의 민간 신앙에서 마을제는 산신제, 당제, 동제, 탑제, 장승제, 기우제, 목제, 도당굿 등인데 산신제가 압도적이다. 이는 산이 많고 상대적으로 평야가 적은 포천의 지형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현재는 20~30% 정도의 마을에서 산신제나 동제를 지내고 있다.

개인 신앙은 주로 성주, 터주 등의 가신(家神) 신앙으로, 집안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고사가 대부분인데, 10여 호 정도에서 조사되었다. 포천을 포함한 경기도 북부 지역 무속은 그 양상이나 무가 가창 방식 등에서 대체로 황해도 무속[서울 포함]과 그 특성을 공유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포천 지역 무속에 대한 심도 있는 조사나 연구가 전무한 형편이다. 다만 마을제와 관련된 도당굿이 소흘읍 이동교 4리, 가산면 가재울 마전 2리, 감암 2리 등지에서 관찰된다. 여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포천의 민간 신앙도 여러 이유로 쇠퇴하고 있고, 머지않아 소멸할 운명에 처해 있다.

1. 마을 신앙

1) 산신제(山神祭): 마을에서 공동으로 지내는 산신제는 주로 남자 제관이 주관하고, 마을에서 가장 신성한 산의 중턱쯤에 산제당을 마련한다. 제각이 있는 곳도 있으나 없는 곳이 대부분이고, 마을에 따라서는 거석이나 오래된 거목을 대상으로 하기도 한다. 행사는 유교식 절차로 진행된다. 이때 주산[산제 터] 부근 마을이 먼저 제를 올리고, 차례대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시기는 음력 7월 말에서 8월 상순 내에 대부분 지내는데 더러는 정초에도 지내어 1년에 두 번씩 산신제를 모시는 마을도 있다. 제물로는 소, 돼지[근래에는 머리나 다리 이용]를 쓰는데 대부분의 마을이 큰 차이가 없다. 특별히 소를 제물로 쓰는 마을은 가채리, 기지리, 길명리, 냉정리 등에서 조사되었다.

제를 모시는 시간은 정오 전이나 저녁 8시 무렵이며, 제가 끝나면 제물 배분과 함께 대동 축제가 이루어진다. 부락 내 거주민들 남녀노소 전부가 음식을 나누어 먹고 농악을 울리기도 한다. 부락에 따라서는 동제를 겸하기도 한다.

2) 동제(洞祭): 보통 동제는 산제와 같이 지내기도 한다. 별도로 지내는 동제는 대동굿, 장승제, 고인돌제, 숫대제, 잣나무, 느티나무제 등으로 동구 목제(洞口木祭)의 형태를 이룬다. 남녀노소 모든 주민들이 함께 제를 올리고 즐기며, 경로잔치나 마을 축제를 겸한다.

특이한 동제로는 신읍 4동의 구신제(狗神祭)[일명 도깨비제]가 있다. 종교가 다른 일부 가정을 제외하고는 전 가구에서 공동으로 모금하여 음력 3월에 개를 통째로 삶아 제물로 삼는 것이 특징이다. 제를 마치면 해당 가구 전원이 제물을 분배하여 축제를 즐긴다. 구신제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피를 좋아하는 도깨비를 위로하여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면서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

3) 장승제 또는 탑제: 명칭이 탑제라고는 하지만 누석단을 중심으로 장승과 솟대가 어울린 복합형으로 대체로 정월에 지낸다. 제의 절차는 당제나 산신제와 비슷하고, 제를 마치고 나서 마을 회의를 한다. 과거에는 기우제도 마을 단위로 행해졌다고 한다. 기지리 탑제의 경우에는 마을 주민들이 개인적으로 돌탑에 떡을 해 놓고 가정의 번영과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식의 고사식으로 지낸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2. 가정 신앙[개인 신앙]

성주를 모신 가정 10여 곳, 터주를 모신 집 10여 곳, 정안수를 올리는 가정 3곳, 용왕제를 지내는 가정 1곳 등으로 조사되었는데, 현재 포천 지역의 개인 신앙은 급속하게 소멸되어 가는 모습이다. 이밖에 산을 배경으로 한 몇 집에서 개인적으로 산신제를 모시는 사람도 15명 조사되었고, 일부이기는 해도 조왕신, 삼신을 모시는 예도 있었다고 한다. 개인적인 고사도 10월에 많이 지냈으나 현재는 거의 지내지 않는다.

3. 무속 신앙

무속 신앙이란 무당이 굿을 통해 사람들의 원망을 충족시켜 주는 신앙 체계이다. 포천의 경우에는 강신무 지역임에도 세습무도 활동하고 있다. 이는 심한 인구의 이동으로 인하여 여러 지역의 무속 형태가 혼합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포천의 무당은 경신 연합회 경기도 지회 수원 산하 24지부에 속해 있다. 1996년에 조사된 바로는 58명의 무당과 5명의 박수가 있었다고 한다[『포천 군지』(포천 군지 편찬 위원회, 1997), 136쪽].

포천 지역 굿의 형태는 본래 한양거리가 중심인데, 지금은 한양거리와 이북거리가 혼합되어 구분하기 힘들다. 황해도와 평안도의 피난민이 많아서 이북 지역의 굿이 잘못 전수되었다고 한다. 즉 현재는 황해도, 평안도의 굿과 한양거리가 혼돈되어 있는 상황이다. 포천을 포함한 경기도 북부 지역 무속은 그 양상이나 무가 가창 방식 등이 대체로 황해도의 무속과 그 특성을 가장 많이 공유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굿으로서의 도당굿은 소흘읍 이동교 4리, 가산면 가재울 마전 2리, 감암 2리 등지에서 관찰된다. 이들은 유교적 제의와 혼합되어 있지 않고 굿의 형태를 띤다는 점에서 이 지역의 무속 신앙을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늘날 남아 있는 포천의 무속 자료는 많지 않지만, 1996년에 조사된 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소흘읍: 이동교 4리 지장사에 한혜성 보살이 인근 부락민의 택일, 신점, 고사, 축원 기도 등을 올린다. 이곳은 5년마다 마을에서 도당굿을 하는 지역이다.

2)군내면: 구읍 1리에 작두 보살이라는 무속인은 있으나 휴업 상태이다.

3)내촌면: 매화동에 음나무 성황당이 있고, 10월에 추수가 끝나고 고사를 지내는 집이 10여 호 남아 있다.

4)가산면: 방축 2리에 보살 3명이 활동하고 있다. 가재울 마전 2리에서는 도당굿을 지내고, 감암 2리에서는 굿도 하고 목신에 제사 지내는 목신제가 행해진다.

5)창수면: 추동 1리에 연화굿당이 있고, 박수봉[64세]이라는 무속인이 거주하며 굿이나 제를 올린다고 한다.

6)일동면: 일동 레이크 골프장에서 격년으로 무속인을 불러다 산신제와 대동굿을 한다. 골프장을 건설하면서 산제 터 2곳이 없어져서 이를 안타깝게 여기는 기산 1리, 유동 1리 주민들의 뜻을 헤아려 골프장 내에 대동굿 자리를 마련하여 행한다. 동민들과 의논하여 날을 정하고, 동제일 오후 3~4시 무렵에 개막식으로 동제를 올리고 전국의 유명한 만신 3명을 초청하여 굿을 한다. 굿이 모두 끝나면 다음날 정오 무렵이 되는데, 이때 동민들에게 술, 떡, 고기 등을 제공하여 함께 즐긴다.

7) 포천동: 어룡 1통 452번지에 사는 김용순[44세]이 신이 내려 굿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굿을 해 준다.

그 밖의 지역은 무속인의 활동이 조사된 자료가 없다.

[포천의 세시 풍속]

현재 포천에는 세시 풍속이 말로만 남아 있는 실정으로, 한옥집조차도 대문의 입춘서(立春書) 보기가 힘들다. 설, 대보름, 액막이 날, 머슴날, 용알 뜨기, 단오, 유두, 칠석, 백중, 추석, 두레제, 천신제, 동지 등에 즐기던 세시 풍속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과거의 기록이나 구술자의 제보에 의해서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월별로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월

설에는 차례를 새벽에 지내고 떡국으로 식사를 하며, 떡은 인절미와 가래떡을 한다. 식사 후 산소에 성묘하고, 세배를 드리면서 덕담을 나눈다. 아침에는 복조리를 파는 사람이 있어 조리에 돈이나 쌀을 담아 놓고 한 해 동안 집안의 복과 풍농을 기원했다. 대부분의 마을에서 산신제를 지내기도 한다. 1월 14일에는 ‘쥐불놀이’를 했고, 지푸라기로 만든 ‘정웅’을 태워 액막이를 하기도 했다.

대보름 에는 호두, 잣 등의 부럼으로 건강을 기원했으며, 귀밝이술을 마시고 오곡밥을 지어 먹는다. 저녁에는 달맞이를 하면서 ‘황덕불’[나무 등거지]이라는 달집을 태우고, 홰에 불을 붙여 홰쌈[횃불싸움]을 한다[포천시 이동면 배산동 샛배 산골에서 신씨네와 송씨네가 두 패로 나누어서 서로 놀리며 싸움을 했다고 함. 송봉준 제보]. 잣점이나 달점을 치기도 하고, 수수깡을 반으로 쪼개어 월별로 콩을 넣고 우물에 담가 놓았다가 다음날 그 불은 것을 보고 점을 치는 ‘달불임’도 있었다고 한다[채정숙 제보]. 또한 ‘내 더위 사가라’는 더위팔기도 행했고, 여자는 널뛰기, 남자들은 윷놀이를 즐겼다.

어부슴’ 또는 ‘어버슴’이라 하여 대보름날 해뜨기 전에 창호지에 주로 아이들의 생년월일시를 적고 밥을 나이 수대로 떠서 봉지에 넣어 큰 개울에 띄워 보낸다. 이 풍습은 한 해 동안 잔병치레 안 하고 무사히 지내게 해 달라는 의미가 있으나, 요즈음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송봉준 제보].

2월

2월에는 입춘첩을 붙이는 입춘 행사가 있었고, 특히 2월 1일을 ‘남의 종날’ 혹은 ‘머슴날’이라 하여 이날 송편에 팥속을 넣어 빚어서 자기 나이대로 먹고 일꾼들을 잘 먹인다[최은순, 유명수 제보].

3월

삼짇날은 제비가 오고 뱀이 나오는 날이라 했고, 양력 4월 5일은 한식날로 조상의 묘에 풀을 깎고 잡초를 뽑아 준다. 이날은 볍씨를 담그는 날이기도 하다.

4월

초파일 에는 그네를 매어 뛰다가 단오에 줄을 끊고,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기도 한다. 그네는 주로 젊은 여자들이 뛰었으며, 외그네와 쌍그네가 있다[송봉준 제보].

5월

5월 5일 단오에는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여자들은 ‘그네뛰기’, 남자들은 씨름을 즐겼다. 음식으로는 느티범벅, 쑥범벅, 귀리범벅, 무시루범벅, 수리치범벅 등을 해서 먹었다. 찹쌀에 취를 넣은 ‘수리취떡’[취찰떡]도 해 먹고, 더위를 이기기 위해서 익모초를 달여 먹었으며, 여자들은 버짐이 안 생기게 아침 일찍 상추의 이슬을 받아 세수했다고 한다[채정숙, 최은순 제보].

6월

6월에는 특별한 행사는 없었으나, ‘머슴날’이라 하여 이날 하루는 머슴들을 배불리 먹이고 놀게 했다고 한다.

7월

칠석 에는 ‘밀떡’을 만들어 성주, 터주, 조왕, 제석 등에 석 장씩 놓았고, 애호박을 부쳐 먹거나 닭 수제비를 끓여 먹는다. 칠성에 빌어 아들을 기원하기도 했다. 복날에는 특별한 음식으로 더위를 이기고자 했다. 백중[음력 7월 15일]에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정자나무 마당에서 꽹과리를 치고 놀았다.

8월

추석 에는 술을 담그고 송편을 빚어 차례를 준비한다. 또 이날은 토란국을 끓여 먹고 성묘를 간다. 6·25 전쟁 이전까지는 마을 정자나무 아래에서 풍물을 치고 무동을 태우고 놀기도 했다. 금주리에서는 8월 1일에 산신제를 지낸다[채정숙, 최은순 제보].

9월

9일은 중구(重九)라 하여 증조부·고조부에게 제사는 지낸다.

10월

10월에는 5대조 이상 조상들의 제사를 한꺼번에 지내는 ‘시제’를 지낸다. 이즈음에는 무시루떡을 해 먹기도 하고, 10월 보름 아침 해뜨기 전에 ‘산치성’을 드리기도 했다[송봉준 제보].

11월

동지 에는 액이나 귀신을 쫓는 붉은색의 팥죽을 쑤어 집안 곳곳에 놓아두고 여기저기 뿌렸다. 동지 팥죽을 먹었는데, 조상 중에 열병으로 돌아가신 분이 있거나 애동지[동짓달 20일 안의 동지], 노동지[일명 망녕 동지, 20일이 지나서 맞는 동지]에는 먹지 않았다[채정숙, 최은순 제보].

12월

섣달은 ‘썩은 달’이라 했고, 밤새 사당에 촛불을 켜 두며, 잠을 자지 않는 ‘수세’와 밤 10시 무렵부터 묵은세배를 한다. 이날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한다.

제보자는 이동면 장암리 153번지 개미 마을 주민 송봉준[남, 78세], 일동면 수입 1리 107번지 주민 최은순[여, 83세], 일동면 유동 1리 130번지 주민 채정숙[여, 66세], 일동면 유동 1리 130번지 주민 유명수[남, 70세] 등이다[이상은 1996년 김선풍 교수가 조사한 것임].

[포천의 민속놀이]

민속놀이는 민속 오락, 민속 경기, 민속 유희, 민속 예능, 전승 놀이, 향토 오락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포천도 현대 문명과 교육의 영향으로 차차 변해 가고 있으나, 아직 마을에 따라서는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포천 지역에서 행해지던 민속놀이를 세시 놀이와 일상적인 놀이로 나누어서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1. 세시 놀이

정월의 설과 대보름 놀이는 전국적인 양상과 거의 비슷하다.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등과 여자들 놀이로는 반지놀음[가락지 찾기], 종지놀음, 호박따기, 춘향이놀이 등이 있다. 농악놀이는 정초, 대보름, 명절, 두레 때 주로 행해졌다. 주로 양반집에서는 종경도 또는 승경도 놀이도 행해졌으나 6·25 전쟁 이후의 자료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보름의 다리밟기도 현재는 전승이 끊어진 상태이다.

특이한 것은 1월 16일 귀신날윷놀이널뛰기로, 이날 바깥출입을 삼가고 이들 놀이를 함으로써 ‘귀신 대가리를 부서뜨린다.’고 하는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포천시 화현면 화현 4리에서는 대보름 축제를 행한다. 아침 10시 무렵에 전 주민이 모여 낮에는 윷놀이, 밤에는 대동 달맞이로 큰 횃불을 켜고 작은 횃불을 돌리며 절하면서 풍년과 건강, 소원 등을 기원하는데, 해마다 지내고 있다.

1월에는 윷놀이, 연날리기, 널뛰기, 줄다리기, 두레놀이, 지신밟기, 기세배 놀이[부락의 농악대와 함께 서열에 따라 농기(農旗)를 숙여 인사하고, 장기 자랑을 하며 노는 놀이], 달맞이[볼놀이], 잣불켜기[잣 알맹이에 바늘을 꽂아 불을 켜서 타는 상태에 따라 그해의 운수를 점치는 놀이] 등을 놀았다. 3월에는 질경이풀 또는 진달래꽃의 수술을 따서 서로 걸어 잡아당기면서 노는 ‘풀씨름’을 했다.

여름 놀이로는 단오의 씨름, 그네뛰기도 행해졌고, 겨울철이나 명절에는 아이들이 서로 마주 앉아 다리와 다리를 엇섞어서 노래를 부르며 다리를 세어 가는 ‘다리 세기’라는 놀이도 있었다. 이밖에 공기놀이, 방아깨비 놀이, 풍뎅이 돌리기, 땅빼앗기, 바람개비 돌리기, 술래잡기[숨바꼭질], 두꺼비집 짓기, 목마차기, 수박따기, 낫치기[낫을 나뭇단에 던져서 꽂히게 하는 놀이], 대방 싸움[여름에 농민들이 논을 맬 때 편을 갈라 하는 김매기 놀이], 장치기[공치기] 등도 행해졌다.

가을에는 나무꾼들이 갈퀴를 던져서 승부를 겨루는 ‘갈퀴 치기’도 있었는데, ‘칼땅 치기’라고도 했다.

겨울에는 자치기, 팽이치기, 그림자놀이, 제기 차기, 포수놀이[겨울철 방안에서 종이에 왕과 포수를 반드시 쓰고, 나머지는 사람 수에 맞게 호랑이, 사슴, 토끼 등을 써서 접은 후에 높이 올렸다가 떨어뜨린 후 집어 본다. 왕을 집은 아이는 포수를 불러 마음대로 짐승 중의 하나를 잡아 오도록 명령하면서 노는 놀이], 엿치기, 여자아이들의 실뜨기 등이 있었다.

2. 일상적인 놀이

포천 지역에 전해 오는 일상적인 놀이들도 전국적인 놀이의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보면 고누, 말타기, 가마놀이, 눈싸움, 딱지치기, 비석치기, 닭싸움, 돌차기[사방치기], 공말타기, 고무줄놀이, 깡통 차기, 말싸움놀이, 새끼줄 넘기기, 돈치기, 골패, 투전, 화투, 장기, 바둑, 비녀 혹은 수건돌리기 등이 조사·보고된 바 있다. 기타로는 성냥개비 놀이, 고생 잡기, 감자 무지, 어부심[대보름 새벽 4시에 성명, 생년월일을 쓴 종이로 밥을 싸서 침을 뱉고 다리 위 하천에 버림으로써 액막이함], 전치기, 화전놀이, 삼복놀이 등도 있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