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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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물품·도구/물품·도구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북원로 255번길 24[자일2리 959-20번지] |
집필자 | 이성학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2년 11월 15일 - 풀피리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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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풀피리 경기도 무형문화재 재지정 |
전승지 | 풀피리 -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북원로 255번길 24[자일2리 959-20번지] |
공연지 | 전국, 해외 - 전국, 해외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기도 무형문화재 |
[정의]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북원로 255번길 24[자일 2리 959-20번지]에서 전해 내려오는 풀잎으로 부는 피리.
[개설]
풀피리는 나뭇잎이나 나무껍질, 풀잎을 접어 입술에 대고 휘파람을 불듯이 소리를 내어 연주하는 우리나라 전통 향악기이다. 이를 ‘초적(草笛)’ 또는 ‘초금(草琴)’ 등이라고도 한다. 풀피리에는 나뭇잎을 사용하는 초금 이외에도 물오른 나뭇가지의 껍질을 벗겨서 피리처럼 부는 호드기나 버들피리 등도 포함된다.
[연원]
풀피리는 일반 백성들이 주로 불었지만 전문 악사들이 궁중 음악으로 승화시키기도 하였다. 1493년 조선 성종 때 성현(成俔)[1439~1504] 등이 편찬한 『악학궤범(樂學軌範)』 3책 7권의 「향부 악기도설(鄕部樂器圖說)」에는 풀피리의 재료와 연주법이 상세하게 기록되었고,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궁중에 초적을 연주하는 악사를 두었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 보인다. 연산군이 장악원에 풀피리 악사(樂士)를 두기 위하여 전국적으로 예쁘고 잘생긴 기녀 중 풀피리를 잘부는 사람을 선발하였고 풀피리 음악에 능하며 이를 즐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영조 20년(1744년) 10월 4일 광명전(光明殿)에서 있었던 대왕대비 및 중궁전(中宮殿)의 진연(進宴)과 10월 7일 숭정전(崇政殿)에서 있었던 대전(大殿) 진연의 시말(始末)을 기록한 문헌인 『진연의궤(進宴儀軌)』에는 대왕대비전의 내연(內宴)에서 주악(奏樂)을 담당하였던 관현맹인(管絃盲人) 13인의 이름과 악기가 밝혀져 있다. 그 중에 초적(草笛) 1인이 포함되어 있으며, 강상문(姜尙文)이라는 실명까지 기록되어 있다. 한편 일제 강점기 때 강춘섭(姜春燮)이라는 초적 명인이 취입한 초적 시나위, 굿거리 등의 음반이 남아 있다. 근래에는 서울과 경기도 일원을 중심으로 풀피리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그 보존과 전승에 노력하고 있다.
[현황]
풀피리는 2002년 11월 15일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보유자 오세철은 10대 중반에 스승 전금산(田今山)에게서 사사한 초금 연주법을 바탕 삼아 자신의 노력을 더하여 청성곡, 민속기악곡, 메나리, 각도민요, 반주[민요.시창]와 산조[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 봉장취를 직접 짜고 한탄강 아리랑을 작사/작곡하여 풀피리로 연주해 오고 있다. 서도 소리꾼 오세철은 전국적으로 활발한 공연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많은 제자를 길러 내면서 풀피리의 전승과 보급에 힘쓰고 있다.
한편 오세철은 전국에 많은 프로그램을 통하여 풀피리 저변 확대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의의]
풀피리는 악기에 음을 내는 구멍 등이 없으므로 음정이 정해져 있는 악기가 아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연주자의 음악성이 필요하다. 한편 나뭇잎은 쉽게 파손될 수 있으며, 동절기에는 구할 수가 없어 연주가 곤란한 단점도 있다. 그렇지만 봄, 여름에는 어디서든 쉽게 악기를 확보할 수 있어서 휴대하지 않아도 되며, 연주법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누구라도 불 수 있는 대중적인 악기이다. 이처럼 풀피리는 소박하면서도 밝고 고운 음색을 자랑하는 향토적이고 대중에 친근한 우리의 악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