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268 |
---|---|
한자 | 驛院 |
영어공식명칭 | Yeokw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유재춘 |
[정의]
조선시대의 삼척 지역에 설치된 관용 교통 수단과 여행객을 위한 편의 시설.
[개설]
조선시대 때 공무 출장, 공문 전달, 공물 운송 등을 위하여 설치한 역과 여행객을 위한 편의 시설인 원을 말한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역원(驛院)은 역(驛)과 원(院)을 말한다. 역은 일종의 관용 교통 수단으로, 서울에서 각 지방에 이르는 도로에 30리마다 설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말·역리(驛吏)·역졸(驛卒) 등을 두어 중앙과 지방 간 공문서 전달, 관물·세공 수송, 관료 및 사행(使行)에 대한 말과 숙식 제공 등을 담당하였다. 원은 여행객을 위한 편의 시설로, 큰 고개 아래나 나누터 등지에 설치하였다.
그리고 역을 수 개 내지 수십 개씩 묶어서 각기 구역을 정하여 도(道)로 구분하고, 각 역도에는 종6품인 찰방(察訪) 또는 종9품인 역승(驛丞)을 파견하여 관리하게 하였다. 각 역에는 역장과 역리·역졸을 두어 역의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관련 기록]
강원도에는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찰방은 없고 역승만 3명이 있었다.[전국 찰방 5, 역승 39] 『경국대전』에서는 찰방 2명과 역승 2명이고, 2개 역로는 찰방역으로 승격하고 종전보다 1개 역로가 증설되었다.[전국 찰방 23, 역승 18] 이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그대로 유지되다가 중종대에 이르러 임시 찰방제로 운용되고, 1535년(중종 30)에는 모두 찰방으로 승격되었다. 『경국대전』에는 4개 역도, 속역 78개가 기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시대 삼척 지역은 평릉도(平陵道)에 속하였다. 평릉도의 중심 역은 나중에 삼척의 교가역(交柯驛)으로 이속되었다. 평릉도의 관할 범위는 강릉을 중심으로 하여 서쪽으로 대관령 방면, 남쪽으로 삼척-울진-평해 방면, 북쪽으로 양양으로 각각 이어졌다.
[변천]
조선 초기 강원도의 역은 3개 역로에 속역이 57개였다. 고려말 조선초에 여러 곳의 역이 통합·이치(移置)되거나 역명 개칭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후 1455년(세조 원년)에 대창도(大昌道)와 보안도(保安道)를 합하여 대창도라 하고 찰방을 파견하였다. 그후 역로는 점차 정비되어 1462년(세조 8) 8월에 은계도(銀溪道)[속역 17, 찰방], 보안도[속역 30, 찰방], 평릉도[속역 15, 역승], 상운도(祥雲道)[속역 16, 역승] 등 4개 역로로 개편되었다. 이러한 속역의 수는 『세종실록지리지』에 기재되어 있는 3개 역로, 57개 역에 비하면 21개 역이 늘어난 것이지만 이는 실제로 역이 증설된 것은 아니었다. 동(同) 지리지의 지역별 기록에 나타난 역수는 총 79개에 이르기 때문에 유사한 수였다. 세조대에 정비된 역도는 『경국대전』에 거의 그대로 기록되었다[4개 역도, 속역 78]. 일부분 역의 신설이나 이전 등이 있었지만 대체로 조선 후기까지 유지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역원의 설치와 변천을 통하여 전근대 강원도 삼척 지역의 교통, 통신 분야 현황 등을 살펴보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