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2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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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㓇原驛 |
영어공식명칭 | Okwonyeo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유재춘 |
[정의]
조선시대 삼척 지역에 소재한 역.
[개설]
옥원역은 조선 초기 3개 역로에서 평릉도에 속한 역 가운데 하나이자 삼척도호부에 속한 5개 역 가운데 하나였다. 옥원역에는 왜구의 요충지라 하여 일찍이 성을 쌓고 천호를 배치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삼척에 속한 6개 역 가운데 하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초기 강원도의 역은 보안도(保安道), 대창도(大昌道), 평릉도(平陵道) 등 3개 역로에다 속역이 57개였다. 그러다가 고려 말 조선 초에 여러 곳의 역을 통합 또는 이설하거나 명칭 변경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후 1455년(세조 1)에 대창도와 보안도를 합하여 대창도라 하고 찰방(察訪)을 파견하였다. 그후 역로는 점차 정비되어 1462년(세조 8) 8월에 은계도(銀溪道)[속역 17, 찰방], 보안도[속역 30, 찰방], 평릉도[속역 15, 역승], 상운도(祥雲道)[속역 16, 역승] 등 4개 역로로 개편되었다. 이러한 속역 수는 『세종실록지리지』에 기재되어 있는 3개 역로 57개 역에 비하면 21개 역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 역이 증설된 것은 아니다. 동(同) 지리지의 지역별 기록에 나타난 역수가 총 79개에 이르는 등 유사한 수일 뿐이다. 세조대에 정비된 역도는 『경국대전』에 거의 그대로 기록되었다.[4개 역도, 속역 78] 이는 일부분 역의 신설이나 이전 등이 있었지만 대체로 조선 후기까지 유지되었다.
옥원역(沃原驛)은 조선 초기 3개 역로에서 평릉도에 속한 역 가운데 하나이자 평릉(平陵), 교가(交可), 사직(史直), 용화(龍化)와 함께 삼척도호부에 속한 5개 역 가운데 하나였다. 옥원역에는 왜구의 요충지라 하여 일찍이 성을 쌓고 천호(千戶)를 배치하였고, 1412년(태종 12)에는 옥원역승겸수성천호(沃原驛丞兼守城千戶)를 두기도 하였다. 『경국대전』에서는 평릉도에 속한 15개 역 가운데 하나였으며, 조선 후기에는 삼척에 속한 6개 역[기존 역에 신흥역 추가] 가운데 하나였다. 18세기 중반경에 용화역에는 관사(館舍)가 있었다. 또 대마(大馬) 1마리, 기마(騎馬) 2마리, 복마(卜馬) 8마리, 역리 30명, 역노(驛奴) 11명, 역비(驛婢) 6명이 소속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