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276 |
---|---|
한자 | 烽燧臺 |
영어공식명칭 | Bongsuda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유재춘 |
[정의]
조선시대 삼척 지역에서 변경 지대 군사 동향을 연기와 불꽃으로 중앙에 보고하기 위하여 만든 시설.
[개설]
봉수는 변경 지대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이나 변경의 진영(鎭營)에 알리는 통신 체제로, 주로 군사 목적에서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특히 봉수는 변경 지대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 정부에 신속히 알림으로써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방에서는 군사 주둔지인 진영에 신속히 연락을 취함으로써 군지휘관이 즉시 군병을 모아 출병 태세를 갖추고 대응하도록 하는 중요한 신호 수단이었다
봉수 역사는 상당히 오래 되었다. 이미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거화(擧火)’, ‘봉현(烽峴)’, ‘봉산(烽山)’, ‘봉산성(烽山城)’ 등과 같은 낱말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봉화를 이용한 통신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군사 목적에 입각한 봉수제도의 존재가 확실히 기록으로 나타나는 시기는 고려 중기 이후이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빈번해지면서 봉수제는 더욱 정비되고 강화되었다.
[조선시대 봉수제]
조선 왕조 초기에는 고려의 봉수제(烽燧制)를 거의 그대로 답습하다가 1422년(세종 4)에 와서 병조로 하여금 의정부 및 각 조(曹)와 더불어 의논하여 전국의 봉수(烽燧)를 정하도록 하고 당(唐)나라 제도를 참고한 거화거수법(擧火炬數法) 등 관계 규식의 제정, 각도 연변(沿邊) 지역의 연대(烟臺) 신축 등 봉수제를 대정비하였다. 특히 1447년(세종 29)에는 연변 지역 연대 축조 사항을 명확히 규정하였다. 연대는 높이 25척, 주위 70척, 대하 사면(臺下四面) 30척으로 하고 그 바깥에 깊이와 넓이를 각각 10척이 되게 참호(塹壕)를 파도록 하였다. 참호 밖에는 길이 3척 정도로 껍질을 벗기고 위를 뾰족하게 깎은 목익(木杙)[말뚝]을 박고, 목익 지대의 넓이는 10척으로 하도록 하였다. 또 연대 위에 가옥(假屋)을 짓고 병기와 생활에 필요한 수화기명(水火器皿) 등을 간수하도록 하였다.
조선시대의 봉수는 전국의 주요 간선로를 5로로 나누어서 이를 직봉(直烽)이라 불렀다. 이 간선 5로는 모두 한양의 목멱산(木覓山)[262m]에 도달하도록 되어 있었다. 목멱산은 현재의 서울남산이다. 강원도에서 올라가는 봉수는 함경도 방면에서 전달해 오는 봉수와 함께 한양 명철방(明哲坊)의 동원령(洞源嶺)에서 받게 되어 있었으며, 양주아차산(峨嵯山)[295.7m] 봉수와 서로 응하게 하였다. 아차산은 현재 서울 광진구에 속하여 있다.
조선시대의 봉수로는 대체로 본선 5개가 있고, 여기에 간선(間線)이 연결되었다. 동북으로 두만강변의 경흥선[서수라], 동남 해변의 동래선[다대포진], 서북 압록강변에서 시작되는 강계선[만포진], 서북 압록강변의 의주선[고정주(古靜州), 현재 의주], 서남 해변에서 시작되는 순천선[돌산도(突山島), 현재 여수시 돌산읍 둔전리봉화산]이 있었다.
[강원 지역의 봉수대]
강원 지역은 16세기 경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기준으로 할 때 함경도 경흥으로 연결되는 본선과 동해안 지대에 간선이 있었지만 18세기경이 되면 경흥으로 이어지는 본선에 속한 평강, 회양, 철원, 금성의 봉수대만 존속하고 동해안으로 이어지는 간선망은 모두 폐지되었다. 이는 조선 초기 때 왜구가 동해안에 출몰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에 대한 경계의 필요성에서 유지된 것이지만 임진왜란·정유재란과 정묘·병자호란을 겪은 후 국방 정책의 관심이 수도와 남북 변경 지역에 집중되고, 동해안에서의 왜구 출몰이라든가 기타 사변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강원도의 봉수대는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모두 47개이다. 그러나 각기 서로 응하는 봉수가 잘못 기재되어 있는 것이 있어 노선을 표시하기가 쉽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강원도의 봉수가 총 49개처가 기록되어 있지만 『세종실록』의 숫자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아 큰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전기 강원도의 봉수로 본선은 함경도 안변의 철령을 통하여 전해 오는 봉수를 회양-평강-철원을 거쳐 경기도 영평현의 미로곡 봉수대에 전달하는 노선이며, 간선은 동해안에서 전달되어 오는 봉수이다. 간선 봉수는 북으로는 통천의 금란성 봉수를 통하여 추지령으로 연결되고, 남으로는 평해의 후리산 봉수를 통하여 경상도 영해의 대소산으로 연결되어 청송을 경유하여 안동에 이르러 동래 본선과 연결되었다.
조선 전기 강원도동해안 지역을 통과하는 봉수 노선 가운데 삼척이 관할하는 곳은 북쪽으로부터 광진산, 양야산, 초곡산, 임원산, 가곡산 등 5개 봉수였다. 또 『척주지』(상)에 따르면 삼척 지역에는 바닷가의 망대인 해정후망(海汀候望) 다섯 곳과 봉수지인 연대(煙臺)가 각각 개곡, 임원, 초곡, 양야, 광진 등 다섯 곳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