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3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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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津山烽燧址 |
영어공식명칭 | Beacon Fire Station of Mt. Gwangjinsa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교동 산52-2 |
시대 | 조선 |
집필자 | 김도현 |
현 소재지 | 광진산 봉수지 - 강원도 삼척시 교동 산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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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봉수 |
[정의]
강원도 삼척시 교동 광진산에 소재하고 있는 봉수터.
[개설]
광진산 봉수는 삼척 후진·광진·정라진·오분리 해안으로 침투해 오는 적에 대한 방어와 연락 체계를 갖추어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밤에는 횃불을 들고 낮에는 연기를 피워 주요 사항을 전달함으로써 주변 마을 주민들에게 빠르게 알림과 동시에 경비, 통신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한 국방상의 중요한 시설이 있던 곳이다.
『세종실록』의 「지리지」에 삼척도호부(三陟都護府) 소속 광진산 봉화(廣津山烽火) 명칭으로 북으로는 강릉부 내 우계현 어을달산(江陵府內羽溪縣於乙達山), 남으로는 양야산(陽也山)에 각각 응한다고 하였다.
광진산 봉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통천의 금란성 봉수(金幱城烽燧)에서 1거 직봉인 회양의 소산 봉수(所山烽燧)와 2거인 영덕대소산 봉수(大所山烽燧), 안동의 봉지산 봉수(烽枝山烽燧)로 연결되는 보조 봉수 역할을 한 총 38기의 간봉과 연결되어 있다. 형태와 기능 면에서 해안 지역에 주로 설치된 연변 봉수로 볼 수 있다. 당시 연변 봉수는 단순한 통신 기능만을 한 것이 아니라 자체 방어와 함께 지역 주민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경보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였다.
[건립 경위]
1446년(세종 28)에는 봉수의 중요성에 비추어 각도 연변 연대의 축조 법식과 중부 봉화의 배설 제도 등이 의정부의 건의로 1447년(세종 29) 연변연대조축지식(沿邊煙臺造築之式)과 복리봉화배설지제(腹裏烽火排設之制)가 동시에 마련되어 시행됨으로써 연변 봉수 시설을 구체화하여 갖추게 되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등 외적 침입이 자주 발생하던 삼척 지역 다섯 곳에 연변연대조축지식과 복리봉화배설지제의 지침을 반영하여 연변 봉수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통신 편의와 해안 방어를 위하여 광진산에 봉수를 설치하였다.
첫 축조[초축(初築)]는 고려시대 말~조선 전기로 보이며, 폐지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 이 지역에 왜구로 말미암은 피해가 거의 없었고 북변에 있는 여진족[만주족]이 이 지역까지 침입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척주선생안(陟州先生案)』에 기록된 삼척부사 류시회(柳時會)[1562~?]가 재임하고 있던 1626년(인조 4)에 영동 지역의 봉대(烽臺)를 폐지하였다는 기록,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삼척의 봉수는 폐지되었다고 한 기록 등을 종합하면 인조 때인 1626년(인조 4)에서 『여지도서』가 편찬된 18세기 중엽 사이로 여겨진다.
[위치]
강원도 삼척시 교동 산52-2번지 일대의 봉화산[108m] 정상부 능선상에 설치되어 있다. 동쪽은 급경사이며, 남·서·북쪽 3면은 방어 시설인 ‘U’자형으로 판 호가 둘러져 있다.
[형태]
연대 주변에 둘러진 호가 동쪽의 급경사로 인하여 전체를 둘러싸지 않은 반원형의 ‘연대+호형 봉수’이고, 남쪽에 건물지로 추정되는 터가 남아 있지만 주초석 등을 발견하기 어려운 점으로 보아 연대 단독형이라 볼 수 있다.
[현황]
광진산 봉수 남·서·북쪽의 3면은 방어 시설인 ‘U’자형으로 판 호를 둘렀고, 바깥쪽으로 호를 설치하면서 목익(木杙)을 세운 둑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북쪽과 남쪽의 호참(濠塹) 외곽은 지형상 산 능선이어서 완만하며, 서쪽 호참 외부는 경사가 급하다. 연대 남쪽 방향과 호참 사이에 건물지로 추정되는 터가 남아 있지만 자세하지 않다.
연대는 석축으로 원형이 일부 훼손된 상태이다. 평면 형태는 원형이며 단봉이다. 계단 시설이 서쪽의 연대 기단부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상부로 올라갈 수 있게 나선형으로 둘러져 있다. 연대 하단부 동쪽으로 기단 일부가 남아 있다. 1단으로, 높이는 대략 34㎝이다.
잔존 연대의 규모는 직경이 동서 6.3m 및 남북 10.3m이다. 연대 하단부의 둘레는 27.0m, 높이는 약 2.1m이다. 연대 주위에는 호와 목익을 설치한 곳으로 추정되는 둑이 있다. 호참 외부 둑은 토축으로, 사이사이에 돌이 박혀 있다. 서쪽 호참 외부 둑에는 돌을 위주로 쌓은 부분이 많다. 호의 규모는 호참 깊이 0.4~1.0m, 너비 4m 정도이다. 전체 둘레는 46m 정도이다. 연대 서쪽 방향의 호 내부에는 토교가 있다. 이는 호의 중간에 위치하여 보행용으로 만든 석축인 것으로 추측된다. 토교는 울산 유포 봉수와 경주 화서지 봉수에서 같은 예가 보인다.
[의의와 평가]
광진산 봉수는 반원형 호, 연대, 방호벽의 형태가 대체로 잘 남아 있다는 점에서 동해안 지역의 연변 봉수 연구 및 분석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