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4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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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伊城 |
영어공식명칭 | Geumiseong |
이칭/별칭 | 금성산성,운주산 남성,금현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달전리|전동면 송성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백영종 |
조성|건립 시기/일시 | 삼국시대 - 금이성 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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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9년 12월 29일 - 금이성 충청남도 기념물 제78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2년 12월 31일 - 금이성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제5호 지정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5년 - 서문 및 성벽 축조방법 확인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7년 - 남문 및 집수시설 확인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금이성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금이성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달전리|전동면 송성리 |
성격 | 산성 |
양식 | 포곡식 |
크기(높이,길이,둘레) | 둘레 660m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세종특별자치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세종특별자치시 시도기념물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과 전동면에 걸쳐 있는 삼국시대 포곡식 산성.
[개설]
세종특별자치시의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차령산맥이 지나면서 거기서 갈라져 나온 지맥들이 전의면과 전동면을 남북으로 지나고 있는데 이들 차령산맥 지맥 사이에 고려산, 운주산, 금성산이 자리하고 있다. 고려산 등 산 정상부에는 산성이 축조되어 있다. 고려산에는 고려산성, 증산에는 증토산성, 운주산에는 운주산성, 금성산에는 금이성이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고려산성 등은 남북으로 열을 지어 분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고려산성과 증토산성은 읍내리의 서북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거의 남북이 일직선상으로 마주보고 있다. 또한 읍내리에 있는 읍내리산성과 이성산성, 금이성 역시 남북으로 뻗어 있는 지맥에 거의 일렬로 위치해 있다. 이러한 지리적인 입지로 인하여 고려산성 등은 서로 연계성을 염두에 두고 축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금이성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의현 산천조(山川條)에 “금성산은 현 남쪽으로 8리에 옛 석성이 있다.(金城山 在縣南八里 有古石城)”라고 되어 있고, 고적조(古跡條)에는 “금이성은 운주산에 있다. 석축으로 주위 1,538척 우물이 하나 있으며 현재 폐되었다.(金伊城 在雲住山 石築 周一千五百二十八尺 內有一井 今廢)”라고 하여 금이성(金伊城)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운주산 남성은 남동 8리에 있다. 1,528척에 우물이 1개소 있으며 속칭 금성산성이라 한다(雲住山南城 東南八里 一千五百二十八尺 井一 俗稱 金城山城)”이라 하여 금이산성을 운주산 남성으로도 불렀다고 소개하고 있다.
[위치]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달전리와 전동면 송성리의 해발 424m의 금성산 정상부에 위치해 있다.
[형태]
금이성은 전체적인 평면 형태가 말각방형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전체 둘레는 660m에 이른다. 성벽 대부분은 붕괴된 상태이며, 일부 구간에서만 성벽의 일부가 남아 있다. 따라서 성벽은 벽돌처럼 납작하게 잘 다듬은 성돌을 이용하여 한 단 한 단 수평을 맞추면서 쌓아 올린 것을 알 수 있다. 성문의 흔적은 동벽, 서벽, 북벽, 남벽에서 확인되었다.
[현황]
성벽은 전체적으로 협축식으로 축조되었다. 1차 발굴조사 결과 서문지는 현문 구조인 것으로 밝혀졌다. 출토유물은 백제 및 신라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고구려계 철복이 1점 출토되어 삼국시대에 축조되어 삼국 모두가 금이성과 연관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2차 발굴조사 결과 남문지도 현문 구조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체성부 외벽은 하단에서 초축 성벽이 노출되어 있고, 초축 성벽에 덧대어 보축 성벽이 노출되었다. 남문지는 초축 이후에 최소 2번의 개축이 진행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성내 가장 낮은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집수시설에 대해서는 시굴조사가 진행되었고, 집수시설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청색점질토와 할석, 치목된 목재 등이 노출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금이성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등장하는 백제의 금현성(金峴城)으로 비정되고 있다. 금현성은 고문헌을 통해 6세기 중반 삼국이 한반도 중부 지역에서의 전략적 우위를 놓고 다툰 중요한 전장으로, 전략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2012년 12월 31일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