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4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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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匠人 |
영어공식명칭 | Jige Craftsman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명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기 |
[정의]
세종 지역에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우리나라 대표 운반 도구인 지게를 만드는 장인.
[개설]
한국인의 생활도구 가운데 지게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널리 사용된 대표적인 운반 도구로,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쓴 농사 도구 중 하나이다.
[지게의 유래]
지게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고분에서 출토된 ‘지게를 진 인물상’과 미륵사지 건물지 주변에서 출토된 지게 목제 조각 등 고고학적 유물 자료를 통해 지게의 오랜 역사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또한 서긍(徐兢)[1091~1153]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을 통해 고려시대 지게 용도를 살펴볼 수 있다. 『선화봉사고려도경』에서 ‘지게’를 뜻하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지만 땔감조에 “고려 사람들은 나무를 어깨에 매는 것은 잘하지 못하고 등에 지고 다닌다.”는 구절이 있어 고려시대에도 나무 운반을 위해 지게가 쓰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조선시대 송강 정철(鄭澈)[1536~1593]이 지은 ‘장진주사(將進酒辭)’에서 지게라는 명칭이 처음 나타나며, 지게 형태나 구조가 기록된 것은 1801년(순조 1)에 발간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도 지게 모습은 김홍도, 김득신, 오명현, 권용정, 김준근 등 조선시대 화가들이 남긴 그림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지게는 산지가 많은 자연 환경 때문에 수레 사용보다도 운반 도구, 진열 도구, 놀이 도구 등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오랫동안 다양한 형태로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경운기 도입, 농로 포장, 농촌 인구 감소 등으로 지게 사용 빈도가 떨어지면서 지게의 전통 제작 기술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세종 지역의 지게 장인]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에 거주하는 조태식 장인(匠人)은 조부 때부터 지게를 제작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50여 년 동안 지게를 만들어 왔으며, 전통지게 제작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는 등 탁월한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에서는 지게가 단순한 운반 도구를 넘어 조상의 삶 지혜를 배우고 우리 전통문화와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도구로 가치가 높다고 판단하고 2019년 2월 전통지게 제작 기술을 보유한 조태식을 장인, 지게장인을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69호로 각각 지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