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5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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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彦陽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윤윤희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809년(순조 9) - 김득용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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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 시기/일시 | 1900년대 - 내판리에 있는 선대 묘소로 입향 시기 추정 |
본관 | 언양김씨 본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
입향지 | 언양김씨 입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 |
세거|집성지 | 언양김씨 집성지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 |
묘소|세장지 | 언양김씨 묘소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고복리 산101 |
성씨 시조 | 김선 |
[정의]
김선을 시조로 하고 김천만을 파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김선(金鐥)을 시조로 하고 김천만(金天萬)을 파조로 하는 언양김씨 통정공파(通政公派)가 1800년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입향한 이래 일가를 이루며 살아오고 있다.
[연원]
언양김씨의 시조는 김선이다. 신라 경순왕의 일곱째 아들이며 고려 태조의 외손자로,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져 언양을 본관(本貫)[시조가 태어난 곳]으로 삼았다. 후손으로는 고려 때 거란족의 침입을 격퇴하는 데 공을 세운 김취려(金就礪)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김천일(金千鎰) 등이 유명하다.
[입향 경위]
연동면 내판리 언양김씨의 정확한 입향 시기는 알 수 없다. 선대의 묘가 청주 서강외일면[현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외면]과 연기 도릉동 등지에 있다가 연기 동일면 명학리[현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명학리], 노곡[현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응암리], 내판리 갈곡[현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 등지에 위치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청주 일원에서 살다가 1800년대에 이르러 내판리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후손들은 김득용(金得容)[1809~?]이 내판에 정착한 이후로 내판리 통정공파를 형성하였다고 전한다.
[현황]
연동면 내판리의 언양김씨는 1960년대 8가구, 2019년 5월 4가구가 거주한 것으로 확인된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연기군의 언양김씨는 1985년 40가구 155명, 2000년 36가구 112명이었다. 2015년 세종특별자치시의 언양김씨는 286명으로 남자 153명, 여자 133명이었다.
[관련 유적]
연동면 내판리의 언양김씨 문중은 연서면 고복리 산101에 위치한 묘역에서 매년 음력 10월 첫째 일요일에 향사(享祀)[제사를 지내는 일]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