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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074
한자 歲時風俗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성남시
집필자 주영하

[정의]

일년을 주기로 하여 계절의 변화 시점, 생업활동의 변화 시점 기념일 등에 행하여지는 풍속.

[개관]

세시풍속은 일년을 주기로 하여 계절의 변화 시점, 생업활동의 변화 시점, 기념일 등에 행해지는 풍속을 가리킨다. 주로 가정과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전래의 세시풍속이 역법 체계에 따라 고정된 날에 행해져왔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서양의 역법 체계를 수용하였기 때문에 전승되어오던 세시풍속이 사라지거나 변용된 경우가 많다. 성남시의 경우 1970년대 이후 형성된 도시이기 때문에 몇몇 자연마을을 제외하면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서 고향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일정한 경향을 지닌 세시풍속을 일목요연하게 말하기 어렵다. 특히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세시풍속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설날]

음력정월의 세시풍속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날은 설날이다. 설날에는 어른에게 세배를 하고, 차례를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독교를 믿는 집이 아닌 경우, 조상에게 반드시 차례를 모신다. 판교동연안이씨 종가의 경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설날 차례에 모셔지는 조상은 불천위(不遷位)와 함께 4대 조상에 한하여 지낸다. 차례의 절차는 신위와 제기, 그리고 음식을 제상에 차리는 진설(陳設), 사당에서 신주를 내어 모시고 나오는 출주(出主), 조상을 모시기 위해 향을 피우고, 술을 토지신에게 바치는 강신(降神), 제관이 조상에게 절을 하는 참신(參神), 술을 따르고 참석자 모두가 조상에게 절을 하는 단헌(單獻), 진설된 음식을 드시도록 하는 점다(點茶), 조상을 보내드리는 사신(辭神), 신주를 다시 사당에 모시는 납주(納主)로 전개된다. 차례를 모시는 장소는 일반적으로 대청마루나 안방이다. 그러나 오늘날 아파트에 거주하는 집에서는 거실에서 모신다. 일반적으로 설날 차례에는 메(밥) 대신에 떡국을 해서 조상에게 바친다.

판교동연안이씨 종가에 전해지는 가승(家承)에 의하면, 정부에서 1972년 음력 설날인 구정(舊正)을 명절로 지내지 못하도록 방침을 정한 이후 설날 차례를 양력 설날인 신정(新正)에 모셔왔다. 하지만 1989년에 정부에서 구정을 ‘민속의 날’로 정하여 1990년부터 공휴일로 정하면서 1990년부터 20여 년 동안 신정(新正, 양력 1월 1일)에 차례를 올리던 것을 이때부터 구정(舊正, 음력 1월 1일)으로 바꾸었다. 이런 경우는 성남의 다른 집안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1972년 이후의 관습으로 인해서 지금도 신정에 차례를 모시는 집들이 있다.

오늘날 성남시민 중에서는 설날에 자신의 고향으로 떠나는 사람도 많다. 고향을 성남시에 두고 있거나 노부부가 이주해 사는 경우, 오히려 성남으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를 특별히 귀성(歸省)이라 부르지 않는다.

[음력정월의 세시풍속]

조사보고에 의하면, 1960년대 금토동고등동에서 행해진 음력정월의 세시풍속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설날에는 차례·세배·덕담·토정비결 보기 등이 행해졌다. 또 육십갑자(六十甲子)로 설날 다음에 오는 첫 쥐날[子日]에는 한해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콩 볶기와 쥐불 놓기와 같은 놀이를 했다. 정월 대보름을 하루 앞둔 음력 정월 열나흘에는 오곡밥 짓기, 오곡밥 얻어먹기, 소밥주기, 식구 숫자만큼 촛불 켜기, 종지놀이 등을 하였다.

그리고 음력 정월 대보름에는 우물에서 용알 뜨기, 부럼 깨물기, 더위팔기, 널뛰기, 윷놀이 등을 하기도 했다. 특히 판교동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남녀로 편을 갈라 ‘너더리줄다리기’를 하여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였다. 음력 정월 열엿새를 다른 말로 ‘귀신닭날’이라 불렀다. 왜냐하면 이날 귀신이 집안으로 들어와서 식구들의 신을 신어보고 맞으면 훔쳐 가는데, 신을 도둑맞은 사람은 병이 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 날 집안에 있는 신을 모두 감추고 대문밖에 체를 걸어두었다.

양력으로 2월 4일 전후에 있는 입춘(立春)에는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 우순풍조(雨順風調) 시화세풍(時和歲豊),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백복래(開門白福來) 등과 같은 입춘첩을 대문에 걸기도 했다. 아울러 보리농사를 했던 금토동에서는 보리의 뿌리를 뽑아서 그 형상을 보고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보리뿌리 점치기를 하기도 했다. 아울러 음력 정월에 집에서 장 담기를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설날에 차례·세배를 하고, 정월 열나흘에 오곡밥을 짓고, 정월 대보름에 부럼을 깨물고 더위팔기를 하며, 귀밝이술을 마시는 정도로 그 내용이 축소되었다. 다만, 정월 대보름에는 시의 지원을 받아 노인회에서 주관하는 ‘척사대회’(윷놀이)가 동마다 개최된다.

[봄의 세시풍속]

조사보고에 의하면, 1960년대 금토동고등동에서 행해진 봄의 세시풍속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음력 이월 초하루에는 나이떡 먹기를 했다. 특히 ‘머슴날’이라고 불린 이 날에 두레패가 중심이 되어 돌 들기를 하여 통과하는 사람에게 나이떡을 먹이고, 두레패의 일원으로 인정을 해 주었다. 금토동의 경우, 1957년 대왕저수지가 생기면서 논농사의 규모가 이전에 비해 커져서 덩달아 두레패의 규모도 커져서 나이떡 먹기 행사가 1970년대 중반까지 중요한 세시풍속으로 행해졌다.

아울러 음력 2월에 일명 ‘좀생이’라고 불리는 맥홀츠 혜성의 ‘플레이아데스성단’을 보고 한해의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 가령 좀생이의 빛깔이 붉으면 가물고 투명하면 곡식이 잘 된다고 하였다.

이외에 음력 3월 3일은 삼짇날이라 하는데, 이날 행해진 세시풍속은 특별하게 보고된 바가 없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세시풍속도 모두 사라져서 행해지지 않는다.

[여름의 세시풍속]

조사보고에 의하면, 1960년대 금토동고등동에서 행해진 여름의 세시풍속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음력 4월 초파일 주민들 중에서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절에 가서 연등을 밝히고 탑돌이를 하였다. 양력으로 5월 5일 전후인 입하(立夏) 되면 논농사를 짓기 위해 못자리를 잡았다. 음력 5월 5일 단오(端午)에는 여자들이 창포를 구해서 머리를 감기도 했다.

한여름인 양력 7~8월에 있는 삼복(三伏)은 중요한 여름 세시풍속이 행해지는 날이다. 하지(夏至, 양력6월 21일경) 다음 세 번째 오는 경일(庚日,양력 7월 12일경~7월 22일경)을 초복(初伏), 네 번째 오는 4경일을 중복(中伏), 입추(立秋, 양력 8월 8일 전후) 후 첫 번째 경일을 말복(末伏)이라고 하는데, 이 삼일을 합쳐서 삼복이라 부른다. 복날이 되면 개울가에 모여서 천렵을 하며 더위를 식히고, 개장국을 끓여서 먹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노인회에서 주관하여 큰 황구(黃狗) 두 마리를 모란시장에서 사서 직접 개울가에서 끓여 먹는다.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보통 식당에 가서 개장국이나 삼계탕을 사서 먹든지, 아니면 삼계탕을 직접 끓여 먹기도 한다.

[가을의 세시풍속]

조사보고에 의하면, 1960년대 금토동고등동에서 행해진 가을의 세시풍속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음력 칠월 칠일 칠석(七夕)에는 밀떡을 만들어 성주신에게 바치고 식구들이 나누어 먹었다. 논농사를 두레패 조직에 의존해서 지은 1950~1970년대 중반까지는 하지(夏至) 전후에 애벌김매기, 애벌김매기 15일 후인 소서(小暑,양력 7월 7일경) 전후에 두벌김매기를 하였다. 두벌김매기가 끝나는 날인 백중(伯仲, 음력 7월 15일) 때 ‘호미씻기’라 하여 두레패가 공동으로 한 김매기에 투여한 노동력을 집집마다 계산했다. 가을의 세시풍속 중 가장 성대한 날은 음력 8월 대보름에 있는 추석(秋夕)이었다. 그러나 일부 마을에서는 추석 때도 추수가 끝나지 않아 지금처럼 성대한 명절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추석 때는 송편을 빚어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논농사를 많이 짓지도 않으며, 지을 경우에도 기계농사를 하기 때문에 오로지 추석만 가을의 세시풍속으로 전승되고 있다.

[겨울의 세시풍속]

조사보고에 의하면, 1960년대 금토동고등동에서 행해진 겨울의 세시풍속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10월 초순에 행하는 산제사와 상달고사, 그리고 시제가 있었으며, 양력 12월 22일경에 있는 동지(冬至) 때는 팥죽을 쑤어 대문에 뿌리고 식구들끼리 나누어 먹었다.

산제사는 다른 말로 ‘산신제’라고 부르는데, 남자들 중에서 뽑은 제관들이 산에 올라가서 제사를 지냈다. 상달고사는 집안의 성주신·터주신·장독대신 등에게 제사를 지내는 세시풍속으로 주로 부인들이 주관하였다. 시제는 같은 성씨의 문중에서 주관하여 선산의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를 가리킨다. 그러나 최근에는 산제사와 상달고사를 지내는 집은 드물고, 문중별로 시제를 음력 10월에 지내는 집들은 여전히 많다.

동지의 팥죽 쑤기 역시 최근까지 집집마다 행하는 집이 많지만, 대문에 뿌리는 일은 주거공간의 변화로 인해서 행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승되는 세시풍속 대신에 겨울이 되면 마을의 친목회가 중심이 되어 단체관광을 떠나는 경우는 증가하고 있다. 더욱이 반드시 겨울이 아니라고 해도, 봄가을로 행해지는 이러한 단체관광은 새로운 세시풍속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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