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3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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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奎承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윤종준 |
출생 시기/일시 | 1835년 - 이규승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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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97년~1898년 - 망경암 칠성대를 중수하고 왕실의 안녕을 기원 |
성격 | 왕족 |
성별 | 남 |
본관 | 전주 이씨 |
[정의]
조선 말부터 대한제국 시기에 망경암 칠성대를 중수하고 나라와 왕실의 안녕을 빌었던 종친.
[개설]
이규승은 조선 말부터 대한제국 시기에 망경암 칠성대를 중수하고 나라와 왕실의 안녕을 빌었던 종친이다. 1897년 망경암 칠성대를 중수하고 암벽에 마애여래좌상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글을 새겼다. 이듬해에 망경암 칠성대 중수비를 세워 망경암에서 여러해 동안 왕실의 안녕을 기원했던 사실을 새겼다. 또 비석을 세워 고종의 즉위와 세자의 탄생을 계기로 임금과 세자, 그리고 평원과 제안 두 대군을 기리는 시를 새겼다.
[가계]
전주 이씨 왕족이며 1885년에 평원대군과 제안대군의 제사를 받드는 후손으로 입적되었다.
[활동 사항]
이규승은 망경암 칠성대를 중수하고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였고, 법륜사에 탱신중탱화와 감로도를 봉안할 때 시주를 하였다. 이규승은 망경암 칠성대 중수비에 ‘가시덤불을 헤치고 폐허가 된 암자 터에 단을 설치하고 돌을 깔아서 절벽 위에 글을 새겼다’, ‘석공이 일을 마치차 망경암 스님들이 치하하였다’라고 적고 있는데 이를 통해 두 번째 비석이 세워진 때인 광무 2년(1898) 전에 망경암 중수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이규승이 1882년부터 망경암 칠성대에 조선 왕실에 대한 축원의 글씨를 새기고 기도를 이어가던 중 봉국사와 법륜사를 드나들던 궁인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졌다. 궁인들은 이규승의 정성에 감동했고 그 사실을 고종에게 전했다. 이규승은 이를 계기로 1885년 벼슬길에 나가게 된 것으로 보이며 기록상으로는 1904년 비서원 승(丞)에 올랐다.
1885년 처음 고종을 친견하는 날, 이규승은 고종의 망경암 칠성대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동안 칠성대에 글자를 새기고 매월 초하루 보름으로 분향하며 치성 드린 사실을 말했다. 이규승은 벼슬길에 나아간 후에도 망경암 칠성대에서의 제의를 지속해 1893년 종묘서 영(令)으로 임명된 직후 칠성대에 첫 번째 비석 ‘망경암소비’를 세웠다. 그리고 을미사변 이후 국장위원으로 명성황후의 장례식을 주관하기도 한 이규승은 대한제국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후 나라가 지속적으로 안정되기를 기원하는 글을 추가로 새겼다.
[저술 및 작품]
이규승은 망경암비와 망경암 칠성대 중수비의 비문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