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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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지역에서 활동한 개항기 의병. 강춘선(姜春善)은 1907년(순종 1) 남상목(南相穆) 의병 부대에 참여하여 후군장(後軍將)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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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지역에서 활동한 개항기 의병. 김재선(金在善)[1885~?]은 대한제국 시위대(侍衛隊)에서 퇴역한 군인으로 성남 출신의 남상목(南相穆)이 일으킨 의병 부대에 좌익장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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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지역에서 활동했던 개항기 의병. 김태동(金泰東)[1888~?]은 독일어를 공부하며 인쇄소 문선으로 일하다 성남 출신의 남상목(南相穆)이 일으킨 의병 부대에 종사(從事)로 가담하여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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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1896. 개항기의 의병장. 본관은 의성(義城). 경북 의성에서 출생하였으며, 후에 서울로 이주하였다. 자는 계삼(季三), 호는 해운당(海雲堂)이다. 젊어서 천문, 지리, 병서, 의학서 등을 널리 탐독하였다. 1895년 11월 단발령이 내려지자 이종동생 조성학(趙成學), 동지 구연영(具然英) 등과 이천으로 가서 이천, 양근, 지평, 광주, 안성, 음죽 방면의 의병을 모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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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출신의 개항기 의병.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문일(文一)이다. 아버지는 남진희(南晋熙), 어머니 전주이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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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지역에서 활동한 개항기 의병. 송주상(宋柱祥)[1886~?]은 1907년(순종 1) 성남 출신의 남상목(南相穆)이 일으킨 의병 부대에 종사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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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의 의병장.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乙未事變)과 함께 단발령(斷髮令)이 강제로 시행되면서 전국적으로 척사위정(斥邪衛正)을 부르짖는 유림이 중심이 되어 의병부대가 결성되었다. 경기도 의병 또한 남한산성을 거점으로 1896년 1월 거병하였다. 이때 광주의병(廣州義兵)을 이끌었던 중심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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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이천수창의소 의병진의 우군장으로 활동한 재야유생의 의병. 신용희의 호는 운호(雲湖)이며, 자는 이현(利現)으로 본관은 평산이다. 그에 대한 상세한 자료가 불명확한 관계로 접근하기 어렵지만 대략적으로 족보에 관직의 경력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재야유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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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과 광주, 용인 지역에서 활동한 개항기 의병장. 이익삼(李益三)은 개항기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을 일으키고 한남창의소(漢南倡義所)라는 이름으로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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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지역에서 활동한 개항기 의병장. 이춘삼(李春三)은 성남 출신의 의병장 윤치장과 함께 의병 활동을 한 인물이다. 윤치장이 의병대장이 되고 이춘삼이 부대장이 되었다가 윤치장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면서 지휘권을 이어받아 대장으로 활동하였다....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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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외세의 침투에 대항하여 국권을 지키고자 하는 움직임으로부터 일제강점 후 주권을 되찾고자 벌였던 일련의 반외세, 반봉건을 지향한 운동가 근대화 과정에서 민족주의운동은 대내적으로 반봉건적인 모순을 제거하는 동시에 제국주의 외압으로부터 자주 국가를 건설하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근대 민족주의운동은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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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교상(金敎爽)은 서울에서 출생했지만 지금의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인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탄리 256번지에서 거주했다. 1920년 대한독립단을 조직하여 이재인(李載仁), 안교동(安敎童), 강학희(姜學熙) 등과 함께 항일 문서를 인쇄 배포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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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지역에서 활동했던 교육가이자 정치가. 신익희는 경기도 광주에서 출생하고 성장하였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다. 언론인이자 교육자, 정치인으로서 대통령 후보가 되어 호남 지역으로 선거 유세를 가던 중 기차 안에서 뇌일혈로 사망하였다. 성남에 있는 양영고등공민학교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 양영고등공민학교는 후에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나뉘었는데 지금의 양영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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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 광복군 제2지대원으로 유격전 등 항일투쟁을 실천한 독립운동가 무장투쟁론을 실천한 염재항은 광주군 중대면 출신이며 1899년 9월 22일에 출생하였다. 다른 이름은 염파(廉波)이며 광복군에 입대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중국의 임시 수도 충칭(重慶)에서 창설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이며 공식 명칭은 한국광복군이다. 1937년 창설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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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묘가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남원(南原), 본명은 윤재옥(尹在鋈)이고 윤재원(尹在元)으로도 불렀다. ‘치장(致長)’은 자이다. 아버지는 윤한섭(尹漢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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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고종 32)~192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통제를 구축하고 경찰관서 폭파사건으로 체포되어 옥사한 독립운동가. 1895년 6월 광주에서 출생하였으며 다른 이름으로는 이규상(李揆尙), 이규송(李揆松)으로 불리었다. 1910년 일제 강점으로 인해 부친을 따라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4월 안도현(安圖縣)에서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하면서부터 투쟁을 본격화하였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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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우문(又文). 호는 몽학(夢鶴). 조선 세종의 다섯 째 왕자인 광평 대군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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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철종 11)~1921년. 제국주의 침탈의 위험성을 직시하여 국권침탈조약 반대운동을 전개한 인물. 1860년 10월에 광주군(廣州郡) 대왕면(大旺面) 자곡리(紫谷里)에서 태어났다.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일본 특파대사 이등박문(伊藤博文)에게 을사조약의 파기를 촉구하는 공한을 보냈다. 19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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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 일제의 부역과 세금 수탈에 반대하여 대왕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광주군 돌마면 여수리가 본적인 이시종은 1900년 6월 11일에 대왕면 수서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농업에 종사하던 중 19세의 나이로 송파시위에 참가한 후 자극을 받아 대왕면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헌병주재소에 연행된 뒤 일제에 의해 징역 1년형에 처해져 수감생활을 하였으며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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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독립 운동을 했고 현대에 경기도 성남시에서 예술 활동을 한 독립 운동가이자 시인. 1924년 서울에서 출생한 이용상은 1942년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 재학 중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3개월만에 석방되었다. 1943년 9월 경기도 경찰부에 다시 체포돼 일본군 입대를 강요당했고 결국 1944년 1월 학도병으로 강제 입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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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 일제의 부역과 세금 수탈에 반대하여 대왕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본적은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이다. 대왕면 수서리에 거주하며 1919년 32세에 대왕면의 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헌병주재소에 연행되었다. 일제에 의해 징역 8월형에 처해져 수감 생활을 하였으며 1920년 4월 28일에 만기 출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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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남경군관학교 입교생 모집 활동으로 인해 종로경찰서에 검거된 독립운동가. 본적은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이며 서울 익선동에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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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고종 30)~1968년. 중대면 3.1만세운동에서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을 작성 배포한 인물. 1893년 5월 경기도 광주에서 출생한 후 1919년 28세 때에는 광주군 중대면 송파리에 거주하였고 농업에 종사했다. 김준현과 함께 중대면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는데 중대면의 경우 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가 있어 타지역과 비교해 보면 경계가 엄중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장덕균은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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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고종 11)~?. 광주군 중대면 송파진헌병주재소 앞에서 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한 인물. 천중선의 본적은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송파리이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종교는 기독교이며 일명 중선(仲善)으로도 지칭되었다. 1919년 46세 때 송파진헌병주재소에서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한 결과 1년 징역형에 처해져 수감 생활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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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중국군관비행학교 관비생을 모집하는 점조직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도능의 본적은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이다. 그는 남한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세브란스 치과의원 기공실 견습생으로 있었다. 1934년 10월부터 1935년 1월 경까지 천진에 거주한 후 귀국하여 약방의 점원으로 있었다. 1930년대 국내의 독립운동이 잠재된 형태로 전개되는 시기에 점조직원으로 활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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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고종 18)~1950년. 돌마면 만세시위를 주도한 후 민족협동전선 운동인 신간회 지회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한백봉은 1881년(고종 18)에 한란의 29세 손으로 태어났다. 자는 성의(聖儀), 호는 송헌(松軒)이며 본관은 청주이다. 1919년 당시 39세로 광주군 돌마면 율리에 거주하였으며 생업은 농사였다. 돌마면의 유지로 활동하며 3.1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하는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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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고종 4)~?. 북경 동서동 직문대로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한 인물. 한영복은 1867년에 출생하였으며 거주지는 광주군 돌마면 분당리 44번지로 나타난다. 성장 과정은 정확하게 추적하기 어렵지만 1914년에 북경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한영복의 호는 유농(有農) 또는 남농(南農)으로 불리었으며 일명 세량(世良)으로 지칭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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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성남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 황에스더는 1913년 비밀결사대 송죽회를 조직해 학생들과 항일 정신을 고취하고 군자금을 마련해 중국의 항일 단체를 지원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에스더’라는 세례명을 받았는데, 비슷한 한글 이름으로 황애덕(黃愛德)은 ‘황애시덕(黃愛施德)’이라고도 불렸다. 1892년(고종 29)에 태어나 1971년에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