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3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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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한정수 |
[정의]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지금의 경기도 양주시 일대에 설치한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신라 경덕왕 대에 한강 주변 지역을 한산군으로 편제하여 다스렸는데, 양주(楊州) 지역도 여기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898년 왕건(王建)에 의해 양주와 견주(見州)가 정벌되면서 궁예(弓裔)의 세력 아래에 속하게 되었고, 고려 건국 이후 한강과 임진강 일대에 해당하는 양주는 요충지로 인정받았다. 때문에 태조는 후삼국 통일을 완료하면서 견훤(甄萱)에게 양주를 식읍으로 내리기도 하였다. 양주는 건국 초부터 정치·경제·군사·교통 면에서 고려 왕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권50, 열전 10 궁예]에서는 광화(光化) 원년 무오 봄 2월에 궁예가 송악의 성을 수리하고 태조를 정기대감(精騎大監)으로 삼아 양주와 견주를 치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高麗史)』[권2, 세가2 태조 18년 6월]에서도 태조가 견훤을 일컬어 상보(尙父)라 하고 남궁(南宮)을 관사(館舍)로 주었으며, 지위를 백관(百官) 이상으로 올리고 양주를 내려주어 식읍(食邑)을 삼게 하였다. 또한 금과 비단 그리고 노비 각각 40명과 말 10필을 내려주었으며 앞서 항복해 온 사람 신강(信康)을 아관(衙官)으로 삼았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내용]
신라 경덕왕 이래 한강 일대를 중심으로 설치된 한산군에 양주와 견주가 포함되었다. 신라의 영토였던 이곳은 후삼국 시대가 도래하면서 왕건에게 정벌당하자 태봉(泰封)의 영역에 들어갔다. 지금의 경기도 북부 지역이 태봉에 속하게 된 것이다. 고려 건국 후 후백제 견훤이 비밀리에 귀부해 오자 그에게 양주를 식읍으로 내려주었는데, 이것은 개경과 근접 거리에 있었던 양주가 교통 및 경제, 군사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변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