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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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州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학수 |
[정의]
조선 전기 진관 체제에 따라 경기도 양주 지역에 편성된 군사 체제.
[제정 경위 및 목적]
1457년(세조 3) 세조는 군익도(軍翼道) 체제를 강화하여 진관 체제로 바꾸었는데, 이때 경기도에 양주진을 비롯한 수원진, 광주진, 강화진, 개성진 등 총 5개 진을 설치하여 수도 한양을 방어하는 군사 조직으로 활용하였다. 당시 계유정란에 의해 왕위를 찬탈한 세조는 많은 반란의 위기에 처해 있었으므로 군사 조직의 점검이 절실하였기 때문에 진관 체제의 틀 속에서 한양을 방어하는 중요 거점인 양주에 진을 설치하게 되었다.
[관련 기록]
양주진과 관련된 내용은 『세조실록(世祖實錄)』의 세조 1년 9월 11일 기사, 세조 3년 10월 20일 기사, 『만기요람(萬機要覽)』 군정편 3 총융청 개영시말,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별집 8권 관직전고 수어청조에 기록되어 있다.
[내용]
경기도 양주진에 연천, 마전, 적성, 원평, 교하, 고양, 수평, 포천, 가평 등을 소속시켜 편제함으로써 수도 한성부를 방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토록 하였다.
[변천]
진관 체제에 의해 형성된 양주진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변화하게 된다. 임진왜란 당시 진관 체제에 의한 군사 조직이 허술함을 드러내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5군영 체제가 탄생하였다. 5군영 체제가 형성되면서 양주진은 총융청 소속의 양주영(楊州營)으로 변화하고 다시 수어청 소속으로 이관되었다.
[의의와 평가]
수도 한양을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양주 지역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