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4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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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西山 |
이칭/별칭 | 서산골짜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가마골로 188-55[부곡리 14] |
시대 | 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서동일 |
비정 지역 | 서산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가마골로 188-55[부곡리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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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지명 |
관련 문헌 |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양주 땅이름의 역사』 |
[정의]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에 있던 산. 또는 그 산이 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서산(西山)은 조선 시대에 한양[서울]에서 볼 때 서북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부곡리를 둘러싸고 있는 산으로는 일영봉·제일봉·종래봉·매봉 등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느 산을 가리키는 것인지, 네 개의 산 전체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서산은 서산골짜기라고도 불렀으며, 장흥면 전체를 가리키는 지명이기도 하다.
[형성 및 변천]
서산이란 이름은 14세기 말의 정황을 기록한 『태조실록(太祖實錄)』에서 처음 발견된다. 1395년(태조 5) 9월 25일 기사에 태조가 서산에 행차하여 성을 쌓은 터를 살폈다는 내용이 보인다. 이밖에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서산에 관한 기사가 총 61건 등장하는데 대개 국왕의 사냥과 관련된 내용이다. 즉 이곳은 조선 시대에 강무장(講武場)[국왕의 공식 사냥터]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지리적으로 한양에서 가깝고 산세도 깊고 험하기 때문이었다.
서산이란 이름은 『청구도(靑邱圖)』[1834],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1861], 『대동지지(大東地志)』[1864]에서 계속 확인된다. 『대동지지』에는 산세가 매우 험하고, 이 지역에 청담동(淸潭洞)·부동(釜洞)·온릉(溫陵)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옛날부터 사람들에게는 ‘서산 가마골’이 잘 알려져 있다. 1914년 일제의 지방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양주군 장흥면 부곡리 14번지 일대가 되었다.
2003년 양주군의 시 승격 이후에도 면 이하 행정 구역의 변동이 없다가, 「도로명주소 등 표기에 관한 법률」[2006]에 따라 2011년 7월부터 양주시 장흥면 가마골로 188-55 일대에 속하게 되었다.
산으로서의 서산은 도봉산(道峰山)[716m]과 개명산(開明山)[621m] 사이에 있으며, 동쪽으로 의정부, 서쪽으로 고양시, 남쪽으로 고양시 및 서울특별시, 북쪽으로 백석읍과 접해 있다. 서산은 양주시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현황]
서산은 서울 외곽에 위치해 있고 때 묻지 않은 자연 상태를 보존하고 있어 도시인들에게 각광받는 휴식 공간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