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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군읍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525
한자 楊州郡邑誌
분야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양주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종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8년연표보기 - 규장각 자료 총서 지리지편 『경기도읍지』 2권에 영인본으로 간행
소장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대학동 산239-1
성격 읍지|지리지
표제 양주군읍지

[정의]

개항기 때 간행된 경기도 양주 지역에 대한 지리지.

[개설]

『양주군읍지(楊州郡邑誌)』는 조선 후기 양주목(楊州牧)을 대상으로 한 지리지로 오늘날 남양주시, 구리시, 의정부시, 동두천시, 일부 연천군 지역을 포괄하고 있는 읍지이다. 19세기 중반 양주의 지역 사정과 정보를 전반적으로 잘 알려주는 문헌이다.

[편찬/간행 경위]

『양주군읍지』의 저본은 확실치 않으나 19세기 중반 또는 광무 연간[1897~1907]에 필사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중반에 필사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근거는 1842~1843년에 만들어진 『경기지(京畿誌)』의 「양주읍지(楊州邑誌)」와 체제와 내용이 거의 유사한 것에 근거하며, 광무 연간으로 추정하는 것은 전부(田賦), 군액(軍額), 조적(糶糴), 공해(公廨) 조의 각 창의 조적 관계 기록을 제외하면 고종 초년에 편찬된 『경기읍지(京畿道邑誌)』[규12177]에 수록된 『양주목읍지』와 내용이 비슷한 것에 근거한다. 한편 인물 편목에 마지막으로 등재된 신씨(申氏)조에 보이는 ‘당저정미(當宁丁未)’는 1787년(정조 11)으로 추정되는데, 이로부터 정조 때 만들어진 읍지를 저본으로 삼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서지적 상황]

『양주군읍지』는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청구 기호 ‘규(奎) 10733’으로 분류, 소장되어 있으며, 1998년 규장각 자료 총서 지리지편 『경기도읍지』 2권에 영인본으로 간행되었다.

[형태]

1책 1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필사본 채색 지도가 있다. 크기는 가로 21.4㎝, 세로 32.8㎝이다.

[구성/내용]

읍지 맨 앞에 채색 지도가 첨부되어 있다. 편목은 건치 연혁, 군명, 성씨, 산천, 제언, 토산, 봉수, 궁전, 학교, 서원, 역원, 발참(發站), 목장, 면리(面里), 불우(佛宇), 사묘, 능묘, 고적, 명관(名官), 인물, 제영, 진공, 장시, 교량, 민호(民戶), 전부(田賦), 군액(軍額), 조적(糶糴), 공해(公廨), 관방(關防), 형승(形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양주 지역의 사정과 상황을 알려주는 문헌으로서 사료적 가치가 있지만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점은 아쉽다. 편목 구성이 편중되지 않게 잘 갖추어져 있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전반적으로 내용이 축약된 측면도 있다. 양주는 수도 한성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으로, 일찍이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능인 건원릉(健元陵)을 비롯하여 능원지로 각광받아 왔다. 다른 읍지와 달리 능묘 조가 높은 비중으로 다루어졌다는 점도 『양주군읍지』가 갖는 특징 중 하나이다.

[참고문헌]
  • 『경기도읍지』 2(서울대학교 규장각, 1998)
  • 규장각한국학연구원(http://kyujangga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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