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5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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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州郡 宮內府 所管 各 屯土 査檢案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서동일 |
[정의]
1899년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궁내부 소유의 둔토 현황을 기록한 문서.
[개설]
「양주군 궁내부 소관 각 둔토 사검안(楊州君宮內府所管各屯土査檢案)」은 1899년 10월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궁내부(宮內府) 소유의 둔토(屯土)를 정확히 파악해 보고하기 위해 작성된 문서이다. 궁내부 사검위원(査檢委員) 강봉헌(姜鳳憲)의 서명과 도장이 찍혀 있어, 궁내부에 보고되기 위해 작성된 문건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양주군 궁내부 소관 각 둔토 사검안」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규21024].
[형태]
필사본. 크기는 가로 34㎝, 세로 24㎝이다. 『경리원역둔토성책(經理院驛屯土成冊)』[필사본, 2책]에 수록되어 있으며, 작성자는 양주군수 조정구(趙鼎九)이다.
[구성/내용]
기재 내용은 둔토의 종류, 전(田)·답(畓)의 수[단위는 두락], 그 전답에서 거두어들이는 타조(打租)·도조(賭租) 등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양주에는 양향둔(糧餉屯)·경리둔(經理屯)·총융둔(摠戎屯)·충훈둔(忠勳屯)·용호둔(龍虎屯)·관둔(官屯)·어영둔(禦營屯)·의정부둔(議政府屯)이 있었다. 양향둔의 타조·도조는 77석 4두 2승 5홉, 도전(賭錢)은 62냥 6전 1푼이었다.
경리둔은 당시 처음으로 도조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고, 조(租)는 166석 1두 3승이었다. 총융둔은 조가 57석 7두 8승, 전이 320냥이었다. 충훈둔은 조가 38석 15두 5승, 전이 17냥이었다. 용호둔은 전이 8냥이었다. 관둔은 조가 6석, 전이 7냥 8전 5푼이었다. 어영둔은 화속(火粟) 추수(秋收)가 600여 석이었다. 의정부둔은 선희궁(宣禧宮)에서 관리하였다.
[의의와 평가]
「양주군 궁내부 소관 각 둔토 사검안」은 대한 제국 시기 황실 재정 운영의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