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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최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758
한자 楊州 崔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양주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서동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시기/일시 1353년연표보기 - 양주 최씨 양주 입향
본관 양주 최씨 - 경기도 양주시
입향지 양주 최씨 - 경기도 양주시
세거|집성지 양주 최씨 - 경기도 화성
세거|집성지 충청남도 서천
세거|집성지 황해도 안악
성씨 시조 최억
입향 시조 최억

[정의]

최억(崔億)을 시조로 하고 경기도 양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연원]

양주 최씨의 시조는 최억으로, 자(字)는 원가(遠可), 호는 청계(淸溪)이다. 소벌도리(蘇伐都利)의 후손으로, 고려 시대에 태사(太師)와 호부 상서(戶部尙書)를 지냈다. 1353년(공민왕 2) 양주군(楊州君)에 봉해지고 사패지를 하사받았다. 이후 후손들은 양주를 본관으로 삼고 세거하기 시작했다. 파(派)는 정언공파(正言公派)·호은공파(湖隱公派)·참판공파(參判公派)·진사공파(進士公派)·승지공파(承旨公派) 등 5개 파로 구성되어 있다. 6세손까지는 양주에 거주했으나 이후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정언공파의 경우, 7세손이 수원으로 이주하고, 14세손이 황해도 안악으로, 15세손은 재령으로 이주했다. 호은공파의 경우, 10세손부터 수원에 거주하다가 14세손 대에 전라도로 이주하고, 15세손이 김제·정읍에 거주했다. 특히 고부에서는 후손들이 번창했다. 참판공파의 경우, 수원에 거주하다가 황해도 해주로 이주하고, 17세손 대에는 장연으로 이주했으며, 경기 과천·옹진에도 세거했다. 진사공파는 7세손 이후 주로 수원에 세거했고, 승지공파는 줄곧 수원·화성에 세거했다.

주요 인물로는 사간원 정언을 지낸 최정안(崔井安), 군수를 지낸 최정연(崔井涓),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큰 공을 세운 최홍개(崔弘漑)·최홍택(崔弘澤)과 병조호란 때 순절한 최정걸(崔挺傑) 등이 있다.

[현황]

양주 최씨는 전국적으로 1992년에 4370명, 2000년에 1205가구 3892명이 있다. 2000년 현재 경기도에 거주하는 양주 최씨는 460가구 1480명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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