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7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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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鷹根 |
이칭/별칭 | 계경(溪卿),의석(宜石),청헌(淸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만용 |
출생 시기/일시 | 1793년 -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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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16년 - 사마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822년 - 익위사세마 |
활동 시기/일시 | 1857년 - 충청도 관찰사 |
활동 시기/일시 | 1858년 - 가의 |
활동 시기/일시 | 1859년 - 자헌 |
활동 시기/일시 | 1860년 - 공조 판서, 형조 판서 |
활동 시기/일시 | 1862년 - 정헌 |
몰년 시기/일시 | 1863년 7월 12일 -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66년 5월 - 묘갈 건립 |
묘소|단소 | 묘소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삼일로[석우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안동 |
대표 관직 | 형조판서 |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 자는 계경(溪卿), 호는 의석(宜石). 증조할아버지는 승지를 지냈고 좌찬성에 증직된 김제겸(金濟謙)이고, 할아버지는 목사를 지냈고 좌찬성에 증직된 김이경(金履慶)이며, 아버지는 이조 참판을 역임한 후 영의정에 증직된 김명순(金明淳)이다. 어머니는 정경부인 평산 신씨(平山申氏)로 첨정을 지내고 좌찬성에 증직된 신광온(申光蘊)의 딸이다. 부인은 정부인 용인 이씨(龍仁李氏)로 영의정을 지낸 이의현(李宜顯)의 증손녀이고 첨추밀원사 이재순(李在純)의 딸이다. 아들은 조선 말 영의정, 좌의정, 내각총리대신 등을 역임한 김병시(金炳始)이다. 동생은 규장각 제학을 지낸 김흥근(金興根)이다.
[활동 사항]
김응근(金鷹根)[1793~1863]은 1816년(순조 16) 사마시에 합격하여 1822년(순조 22) 익위사세마로 벼슬길에 나아갔다. 사어(司禦)를 거쳐 공조 좌랑 및 정랑, 사복시 주부, 충훈부의 도사, 경모궁(景慕宮) 사직서령, 종친부 전부, 제용감 판관(濟用監判官), 선혜랑, 군자감정(軍資監正) 등을 역임하였다. 외직으로는 의흥 현감, 임천 군수, 평양부 서윤, 서흥 부사, 수원부 판관, 부평 부사, 청주 목사를 거쳤다. 1855년(철종 6) 가선(嘉善)이 되고, 1857년 충청도 관찰사에 제수되었다. 1858년 가의(嘉義)로 올랐고, 1859년 자헌(資憲)이 되었다. 1860년 공조 판서와 형조판서를 지냈고, 1862년(철종 13) 정헌(正憲)에 올랐다. 1863년(철종 14) 7월 12일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글씨를 잘 써서 평양의 의열사비를 썼다. 충청도 관찰사로 재임하던 1859년 공주목[현 공주시]의 읍지인 『공산지(公山誌)』 편찬에 간여하였다. 『공산지』 제2책의 첫머리에 김응근의 서문이 실려 있다.
[묘소]
묘소는 양주시 광적면 석우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청헌(淸憲)이다. 1866(고종 3) 5월 묘 앞에 묘갈을 세웠다. 규장각 제학을 지낸 동생 김흥근이 글을 짓고, 예조판서 김병덕(金炳德)이 썼다. 앞면의 글은 판의금부사 출신 김병주(金炳㴤)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