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7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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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孟崇業 |
이칭/별칭 | 언량(彦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권만용 |
출생 시기/일시 | 1513년 9월 -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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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577년 12월 -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579년 - 묘표 건립 |
묘소|단소 | 묘소 - 경기도 양주시 남면 화합로 387번길[두곡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신창 |
대표 관직 | 교관 |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관인.
[가계]
본관은 신창(新昌). 자는 언량(彦良).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맹사성(孟思誠)의 5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공조 참판을 지낸 맹계증(孟繼曾), 할아버지는 충청 병마절도사를 지내고 신창군(新昌君)에 봉해진 맹석흠(孟碩欽), 아버지는 봉상시 부정을 지낸 맹종인(孟宗仁)이다. 부인은 성홍(成泓)의 딸로 창산부원군(昌山府院君) 성사달(成士達)의 후손이다. 자녀는 4남 7녀를 두었다. 큰아들은 관상감정 맹윤성(孟胤成), 둘째 아들은 관상감 주부 맹윤탕(孟胤湯), 셋째 아들은 봉훈랑 관상감 판관 맹윤상(孟胤商)이다.
[활동 사항]
맹숭업(孟崇業)[1513~1579]은 1543년(중종 38) 음양과(陰陽科) 식년시에 장원 급제하여 관상감 봉사(觀象監奉事)를 지냈다. 교관(敎官)에 제수되어 천체를 관측하여 달력을 만들기도 하였다. 벼슬을 그만둔 뒤에는 광주(廣州)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나무를 가꾸며 살았다. 1577년(선조 10) 12월 65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양주시 남면 두곡리[화합로 387번길]에 있다. 1578년(선조 11) 2월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합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통정대부 공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1579년(선조 12) 8월 묘지에 춘추관 편수관 황정욱(黃廷彧)이 글을 짓고, 셋째 아들 맹윤상이 쓴 표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