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8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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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尙絅 |
이칭/별칭 | 자장(子章),학당(鶴塘),경헌(景獻)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태훈 |
출생 시기/일시 | 1681년 - 조상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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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08년 - 사마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710년 - 증광문과 병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717년 - 충청도 암행어사 |
활동 시기/일시 | 1721년 - 대사간, 승지, 이조참의 |
활동 시기/일시 | 1722년 - 안주에 유배됨 |
활동 시기/일시 | 1726년 - 함경도관찰사 |
활동 시기/일시 | 1727년 - 파직됨 |
활동 시기/일시 | 1729년 - 복직, 한성부좌 윤, 대사헌, 경기 관찰사, 이조 참판 |
활동 시기/일시 | 1731년 - 사은사 겸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옴 |
활동 시기/일시 | 1736년 - 이조 판서 |
활동 시기/일시 | 1746년 - 한성부 판윤 |
몰년 시기/일시 | 1746년 - 조상경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05년 - 시호를 받음 |
출생지 | 충청북도 충주시 |
부임|활동지 | 충청도 |
부임|활동지 | 함경도 |
유배|이배지 | 안주 - 평안남도 안주군 |
유배|이배지 | 아산 - 충청남도 아산시 |
묘소|단소 | 조상경 묘 -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풍양 |
대표 관직 | 한성부 판윤 |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자장(子章), 호는 학당(鶴塘). 증조할아버지는 풍안군(豊安君) 조흡(趙潝)이고, 할아버지는 조중운(趙仲耘), 아버지는 돈녕부 도정(都正) 조도보(趙道輔)이다. 어머니는 김필진(金必振)의 딸이다. 부인은 이정태(李廷泰)의 딸이다. 아들은 조돈(趙暾)이다.
[활동 사항]
조상경(趙尙絅)[1681~1746]은 1708년(숙종 34) 사마시에 급제하고 1710년(숙종 36) 29세에 증광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설서(設書), 정언(正言), 지평(持平)으로 벼슬살이를 시작하였다. 1717년(숙종 43) 충청도 지역에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지방 관리들을 잘잘못을 조사하여 상벌을 내리도록 하였다. 1721년(경종 1) 대사간, 승지, 이조 참의를 지냈다. 1722년 신임사화 때 노론 계열이라 하여 안주(安州)[평안남도 안주군]에 유배되었다가 아산으로 이배되었다.
1725년(영조 1) 유배에서 풀려나 1726년에 함경도 관찰사로 나갔다. 1727년(영조 3) 정미환국으로 노론인 정호(鄭澔)·민진원(閔鎭遠) 등이 탄핵당하자 이를 변호하다 파직되었다. 1729년(영조 5) 복관되어 한성부 좌윤, 대사헌, 경기 관찰사, 이조 참판을 역임하였다. 1731년(영조 7) 사은 겸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가서 『명사조선열전(明史朝鮮列傳)』을 가지고 돌아왔다. 1736년(영조 12) 이조판서를 거쳐 수어사(守禦使), 병조판서 겸 판의금부사, 판돈녕부사를 지냈다. 1746년(영조 22) 한성부 판윤으로 재임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조상경의 시문집인 『학당유고(鶴塘遺稿)』가 전한다. 서문과 발문이 없어 연대와 편찬자는 알 수 없다.
[묘소]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풍양 조씨 선산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다.
[상훈과 추모]
1805년(순조 5) 영의정에 추증되고, 경헌(景獻)이라는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