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14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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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庚申里 山神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남면 경신리 |
집필자 | 서영각 |
의례 장소 | 경기도 양주시 남면 경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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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민간 신앙|마을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11월 7일 이전[격년] |
[정의]
경기도 양주시 남면 경신리에서 마을의 평안과 무사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개설]
경신리 산신제는 2년에 한 번씩 음력 11월 7일 이전의 동짓달 초에 감악산 남쪽 월봉산 정상에서 마을 사람 모두의 안녕과 무사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월봉산은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지만 경신리의 주산인 월봉산을 지키는 산신을 위하는 산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언제부터 경신리 산신제가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산제일을 정하는 것이나 제관을 뽑는 것은 예전과 변함이 없다. 다만 소를 잡아 온 마을의 큰 축제로 지내던 전통은 사라지고 간소화되었다. 그러나 만일 산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또는 제의가 있기 전에 마을 누군가가 상을 당하거나 마을에 부정한 일이 일어나면 그해에는 산신제를 지내지 않고 그 다음 해로 미룬다.
[신당/신체의 형태]
월봉산을 경신리에서는 달봉산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르는데, 산신제는 바로 이 달봉산 정상에서 지내 왔다. 산신제를 지내는 곳을 사람들은 산신당이라 부르고 있지만, 정작 산신제를 지내는 당집은 없다. 그래서 산신제를 지낼 때면 임시로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 지낸다. 그 주변에는 오래 된 참나무 고목 한 그루가 서 있어 이를 신목(神木)으로 여겼다.
[절차]
음력 시월 그믐날에 제사 지낼 날짜를 잡는다. 동짓달 초이렛날 이전의 정일(丁日) 또는 신일(辰日)을 제일로 잡으며, 산신제 제일이 잡히면 바로 제관을 뽑는다. 제관의 숙식을 담당하는 화주 1명과 축문을 읽는 축관 1명, 제를 주관하는 헌관 1명, 방아를 찧고 제물을 담당하는 소임을 맡은 사람 1명, 제물을 구입하는 일을 맡은 유사 1명 등 총 5명의 제관을 선정한다. 제관을 뽑고 나면 먼저 조라술을 담그고 나서 화주의 집으로 가서 산신제를 치를 때까지 그곳에서 머무른다. 이때 화주의 집 대문에는 왼쪽으로 꼰 새끼에 소나무 가지를 꽂은 금줄을 치고 문 앞에는 황토를 세 무더기씩 양쪽에 놓아둔다.
제관은 화주의 집에 모여 생활하며 근신을 한다. 제관은 산신제를 지낼 준비에만 전념하며, 산신제가 끝나기 전에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화주 집에서는 제관 모두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산신제가 끝난 다음에 그 비용을 돌려받는다. 유사는 제의 전날 의정부장에 가서 제물을 장만한다. 제물은 소머리 1개, 우족 4개, 백설기 3되 3홉[1시루 분량], 통북어 3마리, 조라술 등을 준비하며 과일은 따로 쓰지 않는다. 예전에는 소머리 대신 수소 한 마리를 잡아 산제를 지냈으나 정부에서 민간 도축을 금지한 뒤로 간단하게 소머리를 구해서 대신하였다.
제의 당일 아침에는 천막을 치고 청소를 한다. 저녁 무렵부터 제물을 조리하는데, 밤 11시 이후가 되면 준비한 제물을 가지고 산신당으로 올라간다. 산신제에는 제관 5명만이 참여할 수 있다. 제관은 모두 한복 바지와 저고리 및 두루마기를 입고 산신제의 모든 과정을 진행한다. 제관 일행은 산신당에 도착하면 먼저 백설기를 찐다.
제물이 모두 준비되면 제상에 진설하고 분향을 한 다음 강신을 한다. 헌작과 재배, 그리고 독축, 재배, 소지, 음복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소지를 올리는 순서는 대동 소지부터 시작하여 마을의 각 반별 소지, 세대주 소지[1반부터 호명함], 마을에 있는 각 공장 소지, 외지인의 소지로 진행한다. 소지가 끝나면 바로 철상을 하며 음복에 들어가는데, 음복을 하기 전에 먼저 북쪽에 있는 감악산을 바라보며 고수레를 한다. 산신제가 모두 끝나면 새벽 2시 경이 되는데, 이때 산에서 내려오면 제관들은 화주 집으로 갔다가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축문]
경신리 산신제는 월봉산에서 지내 왔으므로 경신리 주민들이 믿었던 산신은 월봉산 산신이다. 경신리 산신제 축문에 “감악산 남쪽 월봉의 신”이라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세차 간지 십일월 간지 삭 초○일 간지 유학○○○감소고우 감악지남 월봉지신 유아일동 대소민인 감갈비성 복축 신기보우 별무이상 영구진안 근이주찬 지천우신 상향(惟歲次 干支 十一月 干支 朔 初○日 干支 幼學○○○敢昭告于 紺嶽之南 月峰之神 惟我一同 大小民人 敢竭卑誠 伏祝 神其保佑 別無異常 永久鎭安 謹以酒饌 祗薦于神 尙饗).”
[부대 행사]
산신제를 지낸 다음날 날이 밝으면 마을 사람들을 모두 화주 집으로 초청하여 제물을 나누어 먹으면서 결산을 본다. 음복을 할 때 소다리와 소머리는 마을 사람들이 나누어 먹지 않고 제관들이 똑같이 나누어 갖는다. 이것이 경신리 산신제의 유일한 부대 행사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