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17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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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神- 明堂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
집필자 | 조영주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2년 - 『양주군지』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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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남양 홍씨의 묘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
성격 | 설화|전설|풍수담|명당 획득담 |
주요 등장 인물 | 남양 홍씨|한확|자손 |
모티프 유형 | 귀신이 직접 잡은 묏자리 |
[정의]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에서 남양부부인(南陽府夫人) 남양 홍씨(南陽洪氏)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신이 잡은 명당」은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에 있는 양절공(襄節公) 한확(韓確)[1403~1456]의 부인이자, 인수대비[소혜왕후]의 친정어머니인 남양부부인 남양 홍씨의 묘와 관련한 풍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신이 잡은 명당」은 1992년 양주문화원에서 간행한 『양주군지』에 실려 있는데, 이는 1978년 양주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양주군지』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것이다.
[내용]
은현면 용암리에 있는 남양부부인 남양 홍씨의 묘는 신이 잡은 명당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부인의 남편은 서성부원군(西城府院君)인 양절공 한확이다. 장녀를 명나라 선종(宣宗) 황제의 계후(繼后)로 보낸 후 명에 가서 광록사소경(光祿寺少卿)이 되어 영화를 누렸다. 그 부인 홍씨는 이러한 남편에 불만이 있어 자손들에게 죽은 후 절대로 합장을 하지 말라고 유언하였다. 그러나 죽은 뒤 자손들이 양절공의 묘소에 합장을 하려고 하는 순간 상두꾼의 발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자손들은 할 수 없이 축문을 지어 합장을 반대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어느 곳으로 갈 것인지 영험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회오리바람이 일며 상여 앞에 들고 있던 명정(銘旌)이 바람에 날려 용암리의 큰 느티나무 가지에 걸렸다. 그곳을 파서 광중(壙中)[무덤의 구덩이 부분]을 지으니 그제야 상두꾼의 발이 떨어져 장례를 지냈다. 이곳은 도약산(道藥山)이 둘러 있고 용암동천이 열려 있어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가 서로 싸고 있다. 제각과 신도비도 갖추어져 있다.
[모티프 분석]
「신이 잡은 명당」의 주요 모티프는 ‘귀신이 직접 잡은 묏자리’이다. 남양부부인 남양 홍씨가 남편인 양절공 한확과 사이가 좋지 않아 죽은 후에도 남편과 합장되기 싫어하였는데, 혼령이 나타나 자손에게 직접 자신의 묏자리를 명당에 정해 주었다고 하는 명당 획득담이다. 실존하는 인물과 구체적인 지명이 나타나고 있어 전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