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4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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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建國準備委員會靈巖支部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기훈 |
설립 시기/일시 | 1945년 8월 -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영암 지부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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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45년 9월 -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영암 지부 해체 |
성격 | 임시 행정기구 |
설립자 | 조극환 |
[정의]
광복 직후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설립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소속 지부.
[개설]
여운형은 일제의 패망을 대비한 비밀 조직 건국 동맹을 결성하였으며,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항복을 선언하자 이것을 기반으로 하여 치안 유지와 건국 준비 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후 전국의 도, 시, 군마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가 급속히 결성되었으며, 영암에도 조극환, 고재섭, 조덕환 등을 중심으로 1945년 8월 17~18일경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영암 지부가 결성되었다.
[설립 목적]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강령에서 밝히고 있듯이 독립 국가 건설과 민주주의 정권 수립을 위한 과도기적 준비 기구로서 자주적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대중 생활을 보장하고자 하였다.
[변천]
1945년 8월 말 9월 초 미군이 서울에 들어온다는 소식에 좌우가 분립하면서 안재홍 등 중도 우파가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에서 탈퇴했다. 원래의 중립적인 건국 준비의 과도 기구로서 성격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여운형, 박헌영 등 좌익은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대신하는 ‘조선 인민 공화국’을 급조했다.
1945년 9월 6일에 전국 인민 대표자 대회를 개최하여 ‘조선 인민 공화국[약칭 인공)]’을 선포하고 이를 운영할 중앙 인민 위원회를 선출하였다. 이에 따라 영암의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도 1945년 9월 영암 인민 위원회로 개편되었으나 인적 구성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45년 8월 17~18일에 결성된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영암 지부는 영암의 3·1 운동을 주도한 조극환이 위원장을 맡았으며 영암 구림의 대지주였던 고재섭이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조덕환이 보안서장을 맡았으며 임병남이 보안서 부서장을 맡았다. 이창희, 최상호, 곽인섭, 유근욱, 최규동, 최규문, 문학연, 김필제 등이 평의원이 되었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영암 지부의 위원장 및 주요 간부진들은 일제하에서 광주 학생 운동이나 소작 쟁의, 전남 사회 운동 협의회 사건 등과 관련하여 투옥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영암에서는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와 보안서가 군청과 경찰서를 접수하고 실질적으로 영암 지역을 통치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영암 지부는 1945년 8월 17~18일부터 1945년 9월 초까지 한 달도 채 되지 못하는 기간 동안만 존속하였으므로 두드러진 활동 상황이나 상세한 조직을 다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지역 운동을 주도하던 세력들이 자율적으로 건국 준비 조직을 결성하고 치안을 유지하였으며, 이후 민주개혁을 준비하였던 것은 식민지 하에서도 영암 지역 사회의 민주적 성장을 보여 주는 본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