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5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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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靈巖鶴溪里石佛立像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368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경화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광암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불상.
[개설]
영암학계리석불입상(靈巖鶴溪里石佛立像)은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로 들어오는 광암 마을 입구에 있다. 마을의 안녕과 기자 신앙(祈子信仰)[아들이 없는 집에서 아들 낳기를 비는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는 상으로 조선 시대의 불상에 대한 세속적 관념이 반영되어 있다.
[형태]
영암학계리석불입상은 머리 정상부를 솟아오르게 표현했지만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 뼈가 솟아 상투 모양이 된 것]가 분명하지 않고, 귀는 일반적인 불상의 표현과 다르게 짧은 편이다. 눈이 작고 입은 좁게 오므리고 있으며 코는 삼각형으로 튀어나와 있다. 법의는 양 깃이 수직으로 내려와 수평의 내의와 대조를 이루고 소매 폭이 좁다. 오른손은 다리 앞으로 사선을 그리며 내렸고 왼손은 배에 올려 연꽃 봉우리와 같은 지물(持物)[불교의 부처나 보살, 천왕 등이 권능이나 자비를 상징하여 손에 지니고 있는 물건]을 감싸고 있다. 신체는 서 있는 자세의 비례가 잘 표현되지 않고 하체가 짧은 편이다. 대체적으로 불상의 신성한 이미지나 감각적 아름다움에서 이탈하였다. 불상의 왼쪽 어깨 부분의 돌이 깨지고 몸 아랫부분에는 금이 가 있다. 영암학계리석불입상은 제각(祭閣) 안에 보호되고 있으며, 제각 입구의 문에 ‘견성문(見性門)’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특징]
영암학계리석불입상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조선 선조(宣祖) 때 학산면 학계리에 정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슬하에 자식이 없다가 늦게 얻은 아들 하나가 대를 이을 수 없는 고자였다. 정 부자의 아들은 자신의 혈통을 남기지 못한 것을 한탄하여 이 비석 형태의 미륵상을 조각하고, 마을에 선행을 베풀었다. 그리고 논 두 마지기[약 330~495㎡]의 제수 비용을 마련하여 매년 정월 보름이면 영암학계리석불입상에 미륵제(彌勒祭)[미륵을 기원의 대상으로 삼는 동제(洞祭)]를 지내도록 하였다. 영암학계리석불입상은 자손을 바라거나, 마을의 재앙 방지와 평안을 기원하는 미륵제의 대상이 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마을 단위의 기복 신앙과 미륵 불상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하나의 자료가 될 수 있다. 1977년 10월 20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6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영암학계리석불입상은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368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