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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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九皐祠-金完將軍不祧廟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162번지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윤미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640년 - 구고사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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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 시기/일시 | 1889년 - 구고사 화재로 소실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46년 - 구고사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9년 - 구고사및김완장군부조묘 보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1년 10월 20일 - 구고사및김완장군부조묘 전라남도 기념물 제49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구고사및김완장군부조묘 전라남도 기념물 재지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3년 - 구고사 보수 |
현 소재지 | 구고사및김완장군부조묘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162번지 |
성격 | 사당|부조묘 |
양식 | 맞배지붕[구고사|부조묘] |
관련 인물 | 김완 |
크기(높이,길이,둘레) | 3칸[정면]|1칸[측면] |
소유자 | 김해 김씨 문중 |
관리자 | 김해 김씨 문중[김철호]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남도 기념물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김완 장군의 사당과 부조묘.
[개설]
김완(金完)[1577~1635]은 영암 출신의 조선 후기 무신으로 정유재란과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운 인물이다. 구고사(九皐祠)는 김완 장군의 위훈을 기리는 사당으로 김완 장군의 신위가 모셔져 있고, 부조묘(不祧廟)에는 보물 제1305호로 지정된 「김완 초상」이 봉안되어 있다. 구고사및김완장군부조묘는 1981년 10월 20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4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구고사는 김완 장군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1640년(인조 18)에 처음 창건되었다. 훗날 문중 선조이자 고려 말 대제학(大提學)인 김진문(金振門), 조카인 김여준(金汝峻)[1616~1659]과 김여옥(金汝沃)[1641~1686]을 함께 모시게 되었다. 1889년 불에 탄 뒤 1946년 향내 유림의 발의로 중건되었고, 1979년과 1983년에 보수되었다.
부조묘는 국가에서 사당을 짓도록 허락하고 전답과 노비를 내려 후손들로 하여금 제사를 모시도록 한 곳이다. 조선 시대의 경우 4대가 넘는 조상의 신주는 사당에서 꺼내 묻어야 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나라에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위는 왕의 허락으로 옮기지 않아도 되었다. 김완 장군 부조묘는 장군 사후 왕명으로 창건되었으며, 한때 소실된 것을 1979년에 복원되었다.
[위치]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162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형태]
구고사와 부조묘 모두 건물의 형태는 모두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맞배지붕을 취하고 있다. 규모는 구고사가 더 크고 화려하다.
[현황]
구고사및김완장군부조묘는 화소 마을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바로 옆에 화소 경로당이 있고, 길 건너편에는 화소 앞뜰이라 불리는 논 경지가 펼쳐져 있다. 주차장 건너에 피연정(避煙亭)이라는 정자가 조성되어 있고, 외삼문인 대화문(大和門)과 내삼문인 어재문(魚滓門)이 있다. 경내에 동재와 서재가 있으며, 바로 옆에 양무 고택(襄武古宅)이 있다. 경내 맨 뒤쪽 우편에 부조묘가 있고, 좌측에 구고사가 있다.
구고사 내부에는 1625년의 금궤철권(金櫃鐵券), 1728년의 공신록권, 5대조 김년과 김완 및 후손들의 교지 등 유물들이 함께 보존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김완 장군은 1577년(선조 10) 영암군 서호면 몽해에서 출생한 영암군의 대표적인 역사 인물이다. 진무공신(振武功臣) 3등으로 학성군(鶴城君)에 봉해졌으며 뒤에 황해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사후에 병조 판서에 추증되었다. 구고사및김완장군부조묘는 사당과 부조묘의 기능을 함께 하고 있는 곳이며, 보물로 지정된 김완 장군의 영정과 함께 여러 유물들이 모셔져 있어 문화 관광 자원으로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