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7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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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蘆洞祠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룡리 노동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곽아람 |
건립 시기/일시 | 1936년 - 노동사 창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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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노동사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룡리 노동 마을 |
성격 | 사우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밀양 김씨 유남공파 |
관리자 | 밀양 김씨 유남공파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룡리 노동 마을에 있는 밀양 김씨 유남공파의 사우.
[개설]
1936년에 밀양 김씨(密陽金氏) 김병규(金炳圭)가 선조를 배향하기 위해 세운 사우(祠宇)로 김견을 중심으로 김경발, 김종환을 배향한다.
김견(金堅)[1565~1608]의 자는 중실(仲實), 호는 신제(愼齊)로, 1585년에 무과에 올랐고, 임진왜란 때 의거(義擧)하여 이순신의 휘하에서 당항포 대첩과 남해 싸움에서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이 되었다.
김경발(金景發)[1597~1624]의 자는 백용(伯庸), 호는 이암(怡菴)으로 김견의 아들이다. 1622년에 무과에 올라 여러 내직을 거치고 녹도 만호로 나갔다. 1624년 이괄의 난 때 임금을 호위하고 28세에 죽었다.
김종환(金宗瑍)[1814~1865]의 자는 서옥(緖玉), 호는 체암(체巖)으로 김견의 7대손이다. 1846년에 문과에 올라 관직을 지내었고, 개성촌 경력으로 있다가 1865년에 죽은 후 영암으로 반장(返葬)되었다.
[위치]
노동사는 영암군 서호면 청룡리 노동 마을의 가장 깊숙한 곳에 밀양 김씨 문중 사우와 함께 위치하며, 뒤쪽에는 문중 선산이 있다.
[형태]
노동사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골기와 맞배지붕의 형식이다.
[현황]
매년 10월 관내 유림과 자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향을 올리고 있다. 밀양 김씨 문중에서 유지 관리를 맡고 있다.
[의의와 평가]
노동사는 밀양 김씨 유남공파의 사당으로 선조를 기리는 장소이며, 관내의 유림과 자손들을 하나로 뭉치도록 하는 계기와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