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2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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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儒敎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집필자 | 이은정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이루어진 유학과 관련된 제반 활동.
[개설]
유교는 공자를 시조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으로 공교(孔敎) 또는 공자교(孔子敎)라고도 한다.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자 정치학이며 예로부터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의 사상을 지배하여 왔다.
유교는 정치, 경제, 문화 등 한국 사회와 역사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왔다. 한국의 유교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크게 발전하면서 많은 사상적 유파를 형성하였으며 전라남도 영암군도 유교 문화와 관련된 유물, 유적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유교를 조선 시대 주요 유교 교육 기관이었던 향교와 서원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향교]
영암 향교는 영암읍 교동리 356번지에 있다. 영암 향교의 창설에 대한 고려 시대의 사적은 상고할 수 없으나, 조선 시대에 들어와 1420년(세종 2)에 조령(朝令)과 향유(鄕儒)의 협조로 당시 영보역(永保驛)이 있던 역리(驛里)의 괴성개에 창건되었다.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 때 왜구의 침입으로 소실되었고, 1603년(선조 36) 3월 황정노(黃廷老)·문후소(文後素) 등이 주선하여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1739년(영조 15) 2월 최유한·조영만 등이 주력하여 문묘를 중수하였고, 1874년(고종 11) 7월 조낙승(曺樂承)·문남일(文南一) 등이 주력해 다시 중수하였다. 1918년에 보통 학교로 사용하던 중 화재로 전소하였으며, 1922년에 명륜당을 중건하였으나 6·25 전쟁으로 다시 전소되었다. 그 후 대성전, 양사재, 명륜당, 외삼문, 내삼문 등을 중건하면서 현재에 이른다.
[서원·사우]
영암의 서원·사우는 24개소이다. 국가로부터 사액을 받은 것은 유일하게 녹동 서원 1개소 밖에 없다. 나머지는 후손이나 문인에 의하여 건립된 것이며, 그 중 8개소가 문중 사우이다. 1910년대 이전의 서원·사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녹동 서원
녹동 서원은 영암읍 교동리 356번지에 위치한다. 원래 존양사(存養祠)라는 이름으로 1630년(인조 8) 창건하여 연촌 최덕지를 봉안하는 사우였으나, 1665년(현종 7)에 최덕지의 손자인 최충성, 1695년(숙종 21)에 문곡 김수항, 1711년(숙종 37)에 농암 김창협을 추배하였다. 1713년(숙종 39)에 사액을 받았으며, 영당에 최덕지과 김수항의 영정을 동시에 봉안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77년에 복설되었다.
2. 죽정 서원
죽정서원은 군서면 서구림리 403번지에 있으며 1681년(숙종 7) 오한 박성건을 모시기 위해 건립한 사우이다. 원래 창건 시에는 박성건을 주벽으로 하고, 아들 박권을 배향하였으나, 1683년 박규정, 1726년 이만성, 1835년 박승원이 추배되었다. 1868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61년에 복설되었다.
3. 구고사
구고사는 서호면 화송리 159번지에 있으며, 김해 김씨 문중 사우이다. 원래 김완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1640년(인조 18)에 창건되었으나, 김진문과 김여준, 김여옥을 합향(合享)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889년의 화재로 소실된 후 1946년에 중건한 후 1983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4. 구암사
구암사는 영암읍 장암리 1구에 있다. 원래 1668년(현종 9) 영암의 향사우(鄕祠宇)로 이후백과 문익주를 제향하다가 서명백을 추배하여 삼현사(三賢祠)로 불렸다. 1687년에 양정재(養正齋)를 남평 문씨들이 건립하였고, 1778년(정조 2) 문중 재실로 이축한 뒤 1868년 서원 훼철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928년~1936년에 복설된 것이며 문극겸을 주벽으로 문맹화와 곽추를 추배하였다.
5. 장동사
장동사는 서호면 엄길리에 있으며 천안 전씨 문중사우이다. 1677년 임진왜란 공신인 전몽성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사우이다. 1706년(숙종 32) 1차 중수, 1776년(영조 52) 전몽진, 1836년(헌종 2) 전몽태를 추배하였다. 1868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46년에 복설되었다.
6. 서호사
서호사는 군서면 서구림리 322번지 남송 마을에 있으며 창녕 조씨 문중 사우이다. 1677년(숙종 3)에 구림 대동계에서 조두물목(俎豆物目)을 보냈던 사우로 창건되었다. 제향된 태호 조행립은 박동열의 문인으로 임진왜란을 만나 영암 구림에 피난하면서 구림 대동계를 창설하는 등 향리의 교화에 큰 공적을 남겼다. 1868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44년에 복설되었다.
7. 죽봉사
죽봉사는 신북면 모산리 403번지에 있으며 문화 유씨 문중 사우이다. 1665년(현종 6)에 유준을 위해 단을 설치해 제향하였다가, 1729년(영조5)에 죽봉사로 창건하였다. 이때 유상운이 추배되었고, 1868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36년에 복설되었다.
8. 충효사
충효사는 학산면 묵동리 263번지에 있으며 원래 1790년(정조 14) 곽기수, 곽성구, 곽제화의 충효를 추모하여 미암면 남산리에 삼충사로 창건하였다. 그 후 1797년(정조 21) 현 소재지로 이건하였다. 1868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71년에 복설되었다.
9. 송양사
송양사는 덕진면 노송리에 있으며 거창 신씨 문중 사우이다. 1796년(정조 20)에 신희남, 신천익, 신해익을 제향하기 위해 창건되었다. 1826년(순조 26) 신기를 주벽으로 하고 신영수도 추배하였다. 1868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20년에 복설되었다. 현재 건물은 1972~1976년에 보수한 것이다.
10. 운호사
운호사는 서호면 몽해리에 있으며, 김해 김씨 문중 사우이다. 1817년(순조 17)에 김극희, 김함, 김완, 김여옥, 김여준을 제향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1868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철 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61년에 복설되었다.
11. 모산사
모산사는 신북면 모산리에 있으며 하동 정씨 문중 사우이다. 1822년(순조 22)에 정문손을 주벽으로 정운용, 정운을 배향하였다. 1868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76년에 복설되었다.
12. 연촌 영당
연촌영당은 덕진면 영보리에 있으며 연촌 최덕지의 영정 1본과 어전 진상의 유지 초본을 봉안하는 곳이다. 영정과 유지 초본은 1975년 6월 3일 보물 제594호로 지정되었다.
13. 시서 영당
시서영당은 덕진면 금강리에 있으며 시서 김선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으로, 아들인 김시간에 의해 건립되었다. 영정은 1987년 6월 1일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45호로 지정되었다.
[단체]
영암의 대표적인 유교 단체는 성균관 유도회 영암군 지부를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