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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856
한자 全州崔氏
이칭/별칭 완산 최씨(完山崔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집필자 정윤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384년 - 전주 최씨 입향조 최덕지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455년 - 전주 최씨 입향조 최덕지 사망
본관 전주 최씨 본관 - 전라북도 전주시
입향지 전주 최씨 입향지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전주 최씨 집성지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성씨 시조 최순작
입향 시조 최덕지

[정의]

최순작을 시조로 하고 최덕지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연원]

전주 최씨(全州崔氏)는 고려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최순작(崔純爵)이 시조이다. 최순작의 후손 최수강(崔秀岡)이 고려 말에 낙향해, 후손들이 최수강을 중시조로 삼고 완산(完山)[현재의 전라북도 전주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입향 경위]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는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인물 조에서 전주 최씨의 영암 입향조로 확인된다. 최덕지는 고려 때 시중(侍中)을 지낸 문성공파 시조 최아(崔阿)의 후손이며, 호조 참의와 집현전 제학(集賢殿提學)을 역임한 아버지 최담(崔霮)과 어머니 전주 박씨(全州朴氏)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최덕지가 전주와 완산 등지에서 세거하다 벼슬을 버리고 영암 영보촌[현재의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낙향하여 후학을 가르친 이래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하고 있다.

영암 영보촌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전주 최씨는 이후 혼인으로 인한 인척 관계를 통해 서서히 친족 공동체를 형성해 나간다. 이때 전주 최씨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으면서 새롭게 영암에 터전을 마련하게 되는 가문이 거창 신씨(居昌愼氏)남평 문씨(南平文氏)였다.

[현황]

2012년 현재 덕진면 영보리에는 최덕지의 셋째 아들 최숙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47가구 정도 살고 있다. 덕진면 영보리에는 전주 최씨 외에도 함평 이씨 27가구, 거창 신씨 10가구 정도의 주민들도 살고 있다.

[관련 유적]

관련 유적으로 녹동 서원(鹿洞書院)이 있다. 녹동 서원은 1630년(인조 8)에 지역 유림들이 최덕지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영암군 교동리에 존양사(存養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며, 1665년(현종 7)에 최충성(崔忠成)을 추가 배향하였다. 1695년에 김수항(金壽恒), 1711년에 김창협(金昌協)을 추가 배향하였고, 1713년(숙종 39) ‘녹동(鹿洞)’이라는 사액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녹동 서원에는 1452년(문종 2)에 제작된 최덕지의 초상화 원본인 ‘최덕지 초상 및 유지 초본’[보물 제594호]이 봉안되어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만들어진 이 초상화의 복사본이 전라북도 전주시의 서산 서원과 전라남도 임실군의 주암 서원에도 봉안되어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7.12.26 한자 오자 수정 東國與地志 -> 東國輿地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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