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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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德之 |
이칭/별칭 | 가구(可久),연촌(烟村),우수(迂叟),존양(存養),문숙(文肅)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은정 |
출생 시기/일시 | 1384년 - 최덕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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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36년 - 최덕지 김제 군수에 임명됨 |
활동 시기/일시 | 1451년 - 최덕지 예문관 직제학에 임명됨 |
몰년 시기/일시 | 1455년 - 최덕지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30년 - 최덕지 존양사에 배향 |
거주|이주지 | 영암 영보촌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
외가|처가 | 영암 영보촌 -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
묘소|단소 | 최덕지 묘소 - 전라북도 전주시 소양면 죽절리 분토동 |
사당|배향지 | 녹동 서원 - 전라남도 영암군 교동리 356 |
성격 | 입항조|문신|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전주 |
대표 관직 | 예문관 직제학 |
[정의]
조선 전기 영암 지역 전주 최씨 입향조이자 문신·학자.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가구(可久), 호는 연촌(烟村)·우수(迂叟)·존양(存養)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용봉(崔龍鳳), 할아버지는 최을인(崔乙仁)이고, 아버지는 검교(檢校) 최담(崔霮)이다. 어머니는 박인부(朴仁夫)의 딸 전주 박씨(全州朴氏), 부인은 중랑장(中郞將) 조안정(趙安鼎)의 딸 평양 조씨(平壤趙氏)이다.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는데, 둘째 딸과 결혼한 신후경(愼後庚)은 거창 신씨(居昌愼氏) 영암 입향조이고, 손녀사위 문맹화(文孟和)[?~1487]도 남평 문씨(南平文氏) 영암 입향조이다.
[활동 사항]
최덕지(崔德之)[1384~1455]는 1405년(태종 5)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감찰 등 삼사(三司)의 청요직(淸要職)을 거쳐, 외관직으로 김제 군수·남원 부사 등을 역임하며 여러 고을을 다스렸다. 김제에서는 논공법(論貢法)을 상소하여 세제(稅制)의 개혁에 공헌키도 하였다. 도학에 출중하여 교우들의 추앙을 받았고, 『고려사(高麗史)』 편찬에도 참여했다. 남원 부사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영암 영보촌(永保村)에서 거주하였다.
최덕지는 영보촌에 은거하면서 존양루(存養樓)를 짓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1450년(문종 1)에 다시 왕의 부름을 받아 예문관 직제학(藝文館直提學)에 제수되었으나, 이듬해에 연로함을 이유로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왔다. 문종은 최덕지에게 영정 1본을 하사하였고, 동료 문인이던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유성원(柳誠源)·이개(李塏) 등 28명은 송별시를 지어 이별을 아쉬워하였다.
[학문과 저술]
1805년(순조 5)에 최세영(崔世榮)이 최덕지의 글을 묶어 편찬한 『연촌 유고(烟村遺稿)』에 「논공법답험편부소(論貢法踏驗便否疏)」 및 「존양루 시(存養樓詩)」·「공원 시(貢院詩)」 등이 실려 있다.
[묘소]
최덕지의 묘소는 전라북도 전주시 소양면 죽절리 분토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최덕지가 벼슬을 사임하고 낙향할 때 문종이 최덕지 영정 1본과 어전 진상(御前眞像) 유지 초본(油紙抄本)을 하사하였다. 1455년(세조 1)에 최덕지가 72세의 나이로 사망한 뒤 문숙(文肅)이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전주 서산사(西山祠)·남원 주암 서원(舟巖書院)·영암 녹동 서원(鹿洞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1578년(선조 11) 최덕지의 영정은 후손들에 의해 존양루에 봉안되었으며, 1630년 최덕지는 존양사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