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989
한자 守眉
이칭/별칭 묘각 화상(妙覺和尙)
분야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최연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457년 - 수미 도갑사 중창
활동 시기/일시 1458년 - 수미 해인사 대장경 인출
활동 시기/일시 1459년 - 수미 『월인석보』 간행 참여
추모 시기/일시 1633년 6월 - 「도갑사 수미 왕사비」 건립
출생지 수미 출생지 - 전라남도 영암군
활동지 수미 주석처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로 306[도갑리 8]지도보기
성격 승려
성별
대표 경력 판선종사|왕사

[정의]

조선 전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승려.

[개설]

법명은 수미(守眉), 법호는 묘각(妙覺)이다. 영암 출신으로 속성은 최씨(崔氏)이다. 가계와 정확한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다. 13세에 월출산(月出山) 도갑사(道岬寺)에서 출가한 후 교학에 뜻을 두고 수학하다가 선종으로 전향하였으며, 세조(世祖) 대에 판선종사(判禪宗事)로서 불교계의 주요 인물로 활동하였고, 왕사에 책봉되었다. 태조(太祖) 대의 무학(無學)과 더불어 조선 전기의 드문 왕사 책봉 사례로서, 세조 대 불교 중흥의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생애와 행적]

수미의 행적은 도갑사 수미 왕사비[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152호]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어릴 때부터 세속을 멀리하려는 뜻을 지니고 있다가 13세가 되던 해에 월출산 도갑사로 출가하였고, 20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처음에 교학에 뜻을 두어 강원을 찾아다니다가 속리산 법주사에서 신미(信眉)를 만나 도반으로 삼고 함께 수학하였다. 학문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곧 교학 연구에 회의를 느끼고 각처를 유람하며 선문에 출입하다가 등계(登階) 정심 선사(正心禪師)의 가르침을 계승하였다.

세조가 즉위하면서 기존의 억불 정책이 완화되고 불교 진흥 정책이 취해졌는데, 이때에 수미는 판선종사가 되어 불교 중흥을 위해 노력하였다. 1457년(세조 3)에 본사인 도갑사로 돌아와 황폐화된 사찰을 중창하였다. 세조가 왕명으로 문도인 홍월(洪月)에게 불사를 주관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영응 대군(永膺大君)이 시주(施主)가 되어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이듬해에는 신미, 학열(學悅)과 함께 해인사 대장경을 50부 인출하여 명산 각처에 배포하였다. 1459년(세조 5)에는 『월인석보(月印釋譜)』를 간행하는 일에도 참여하였다. 대장경의 인출과 『월인석보』 간행은 세조의 의지에 의해 추진된 불사로서, 이 역시 수미와 조선 왕실의 밀접한 관계를 잘 보여 준다.

도갑사 중창 이후 수미는 이곳에 머물며 종풍을 크게 선양하였다. 세조는 이에 묘각(妙覺)이라는 법호와 자색 가사(紫色袈裟)를 하사하고 왕사로 책봉하였다. 입적 시기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는다.

[묘소]

도갑사 수미 왕사비에 의하면 도갑사 동쪽 산기슭에 행덕을 기록한 비와 함께 부도탑을 세웠다고 하였으며, 이에 따라 수미의 부도가 도갑사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 도갑사에 있는 14기의 부도 중 수미 왕사의 것으로 확인된 부도는 없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