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0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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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成基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이윤선 |
[정의]
김창조의 손녀 김죽파에게 가야금을 가르친 가야금 산조의 중시조.
[개설]
한성기(韓成基)[1889~l950]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화 여자 대학교 문재숙 교수가 집필한 『김죽파 가야금 산조 연구』에서 일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영암군 군서면 모정리 또는 강진군 병영면 출신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그 진위가 밝혀진 바는 없다. 가야금의 비조로 불리는 김창조에게 가야금을 전수받았다. 이후 김죽파에게 전수하여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탄생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혼인할 때까지 맏형 한만기와 함께 살면서 김창조에게 가야금 산조를 배웠다.
[활동 사항]
한성기는 목포, 장흥, 대구 등지를 전전하면서 가야금 산조를 가르쳤다. 가야금 연주자로 명성을 얻게 된 후에도 고향의 마을 행사에 참석하여 연주를 하였으며, 연주할 때마다 사람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었다고 한다. 제자들도 많이 길러냈는데, 1921년 11세의 김죽파를 가르쳤다. 당시 목포에 살던 김죽파의 양아버지 양기환 집에서 3년 여간 머물면서 주로 산조, 병창 및 풍류 등을 가르쳤다. 훗날 판소리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는 한농선(韓弄仙)을 배출하기도 했다. 연변 대학교 출판부에서 펴낸 『조선 민족 음악가 사전』에 “한성기가 최고의 연주자이면서 최옥삼류를 전문적으로 맡아 전수했다.”라는 기록이 있을 만큼 뛰어난 연주자였다. 아쉽게도 한성기 관련 기록이 없어 실상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통일 이후에 북한 자료들을 합산하여 그 전모를 밝힐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