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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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衣生活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집필자 | 이윤선 |
[정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 사람들이 입었던 의복 및 이와 관련된 생활 풍속.
[개설]
옷은 인간 생활을 영위하고 필수적으로 몸을 보호하며 예의를 갖추는 데 필요한 것으로 오랜 세월과 더불어 고유한 현상을 지니면서 변천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는 고대로부터 조선 시대까지 남자는 바지·저고리, 여자는 치마·저고리를 기본으로 하는 복식이 이어져 왔다. 개항기 이후에 외래 문물의 유입과 서구화로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겪으면서 활동에 편리한 양복이 일상복이 되었다. 전통 한복은 명절이나 혼례 등의 예식 때 또는 상복(喪服), 수의 등 전통 의식이 많이 남아 있는 의례 때만 주로 쓰이고 있다.
전통 시대의 의생활은 문헌의 기록이나 출토 복식을 통해 그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데, 영암 지역에서도 문중의 출토 복식을 통해서 그 당시 영암 지역 의생활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2001년 7월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탐진 최씨 문중 묘를 이장하던 중 조선 숙종 때 수군절도사를 지낸 최원립(崔元立)[1618~1690] 장군의 묘에서 다양한 복식과 유물이 출토되었다.
영암 최원립 장군 묘 출토 복식 유물[중요 민속 문화재 제253호] 중 복식은 단령(團領), 철릭, 창의, 전복(戰服), 저고리, 바지, 복건, 전대, 토시 등의 25종 26점이었고, 그 외 이불, 예단, 명정 및 부속품으로 추정되는 직물 등이 있다. 최원립 장군 묘 출토 복식은 17세기 후반 복식 문화와 당시 남자의 복식 전반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일 뿐만 아니라 영암 지역의 의생활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일상복]
영암 지역에서 평상시에 입는 옷은 다른 지역과 큰 차이가 없다. 전통 시대 일상복으로 남자는 저고리·조끼·마고자·두루마기 등을 입었고, 하의는 바지, 머리에는 갓이나 탕건을 썼다. 여자 복식은 저고리·치마에 마고자, 두루마기 등을 착용하였다.
근현대에 이르러서는 일상복으로 주로 양장 형태의 옷을 입었다. 대개 해방 이후 1950~60년대에 일상복이 한복에서 양장 차림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근래에는 공장에서 만든 기성복을 구입하여 착용하기 때문에 일상복의 종류를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의례복]
1. 상례복
상복(喪服)은 입관 이후에 망자의 복을 입는다고 해서 상제(喪制)나 복인(服人)이 입는 옷을 말하는데, 전통적으로 백색 또는 담황색의 면마직을 많이 사용하였다. 남자 상주는 굴건제복이라 하여 효건(孝巾)·최복(衰服)[祭服]·상(裳)·중의(中衣)·행전·수질(首絰)·요질(腰絰)·교대(絞帶)·지팡이·이(履) 등을 입었다. 여자는 관·최복·상과 수질·요질·교대·지팡이·이(履) 등을 입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상복도 간소화, 서구화되어 남자는 검은색 양복에 검은색 넥타이, 마포 어깨띠를 두르거나 가슴에 깃 형태를 달고, 여자는 밝거나 화려하지 않은 양장의 형태로 바뀌었다. 그러나 일부 가정에서는 전통 상복을 고집하는 경우가 있다.
2. 혼례복
혼례복은 혼인을 할 때 입는 예복을 말한다. 전통 시대 이후 광복 이전까지는 신랑은 관리의 예복이던 사모관대(紗帽冠帶)를 혼례복으로 입었고, 신부는 원삼이나 활옷을 입고 머리에는 족두리나 화관을 썼다. 8·15 해방 이후에는 남녀 모두 점차 서양식으로 바뀌어 신랑은 양복을 입고, 신부는 면사포와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요즘은 신랑의 혼례복은 턱시도 등 매우 다양한 형태로 바뀌는 추세다. 다만 폐백이라고 해서 시부모에게 인사하는 절차에는 반드시 전통적인 복식을 갖추는 관행이 남아 있어 전통적인 맥락을 엿볼 수 있다.
3. 돌복
영암 지역에서도 돌복은 아이에게 건강과 축복을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근현대에 이르러서도 돌복은 전통적인 복식을 따르는 것이 보통이며, 아이의 여린 피부에 손상을 가하지 않는 부드러운 천으로 만들었다. 돌복의 청·백·적·흑·황색 오방색은. 다섯 방위에서 오는 모든 복과 아기의 무병장수, 다산, 다복, 생명의 조화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남자아이의 옷은 바지·저고리·전복에 머리에는 복건을 씌우고, 색동두루마기를 입히기도 한다. 여자아이는 색동저고리·치마에 당의를 입히기도 하고 머리에는 조바위를 씌운다.
[의복 관리]
의복 관리는 근현대보다 전통 시대에 중요한 일이었다. 길쌈을 해서 옷감을 만들고 쪽물 등 염색을 하고, 바느질, 빨래하는 것이 중대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빨래는 마을의 공동 샘, 영산강변 마을을 예로 들면 개울 등지에서 하였다.
옷을 지을 때는 품, 길이, 화장, 어깨 등 치수를 먼저 재고, 깃은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여 대강의 치수를 낸 다음 재단을 했다. 그러나 근현대 이후 지금은 대부분 기성복을 사서 입기 때문에 특별한 옷 관리가 풍속화되어 있지는 않다. 영암 장터 등에서 구매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광주 등 인근 도시의 백화점이나 옷가게에서 구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