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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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常服 |
이칭/별칭 | 일상복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윤선 |
[정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 사람들이 일상적인 활동을 할 때 입는 옷.
[개설]
영암 지역 사람들이 일상적인 활동을 할 때 입는 평상복은 우리나라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게 전통 시대에는 바지, 저고리 등의 남자 복식과 치마, 저고리 등의 여자 복식을 기본으로 하여 자가 제작 혹은 바느질하는 사람들에게 맡겨 제작하다가, 해방 이후부터 급속하게 기성품으로 대체되는 변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다만 평상복의 수준은 신분의 고하, 직업의 종류, 계절의 변화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전통 시대의 남자 복식]
영암 지역에서 전통 시대의 남자는 상의는 저고리, 조끼, 마고자, 두루마기 등을 입고, 하의는 바지, 홑바지, 대님을 하고, 머리에는 갓이나 탕건 등을 썼다. 저고리 위에 조끼와 마고자와 같은 겉옷을 입고 겹저고리를 입어 보온을 유지하였다. 또한 전통적으로 외출용 겉옷인 두루마기는 계절에 따라 옷감을 달리 하였다. 평상시나 농사일 등을 할 때에는 주로 무명으로 만든 옷을 입었으며, 겨울에는 솜바지에 솜저고리를 갖춰 입었다.
옷을 지을 때에는 자가 제작을 하는 경우와 바느질하는 사람에게 맡겨 제작하는 경우 등이 있었다. 입던 옷의 본을 뜨거나 새로 치수를 재서 재단을 하였다. 치수를 잴 때는 품, 길이, 화장, 어깨 등을 대상으로 하며 깃은 전체적인 크기를 고려하여 측정했다고 한다. 평상복이라 할지라도 격식을 갖춰야 할 상황이면 남자들은 두루마기를 입었다. 신발 또한 해방 전후로 검정색, 흰색 고무신을 애용하는 것에서 구두, 운동화 등으로 변화되었다.
[전통 시대의 여자 복식]
전통 시대의 여자 복식은 남자 복식에 비해 가짓수가 많다. 예를 들어 남자 기본 복식에 치마나 목도리를 추가하는 형태라고 보면 된다. 여자들의 평상복에는 저고리와 바지를 입고 저고리 위에 조끼 두루마기를 입으며 노인들은 조끼 위에 마고자를 겹쳐 입는 사례가 많았다. 기본적으로는 겹저고리와 솜저고리를 포함한 저고리, 적삼, 회장저고리, 마고자, 두루마기, 치마, 버선 등을 들 수 있다.
여성들도 장날 같은 특별한 날일 경우에는 두루마기를 걸쳐 입거나 목수건을 하는 등 차림을 하기도 했다. 일반 부녀자는 주로 민치마를 입고 속치마를 갖춰 입었다. 여성의 경우에 무명으로 만든 치마와 속곳·저고리 등을 입었다. 그리고 날씨의 변화에 따라 겹저고리를 추가하여 입기도 하였다. 신발은 해방 전후로 코 있는 고무신으로부터 구두 등 양화로 바뀌었다.
전통 시대 일반 남녀 복식은 계절에 따라 여름에는 삼베·모시 등의 옷감으로 의복을 지었으며, 봄·가을·겨울철에는 무명을 기본 재료로 하고 기온에 따라 솜을 넣어 만든 솜바지·솜저고리 등의 보온성에 중점을 둔 의복을 사용하기도 했다.
[근현대기의 남녀 복식]
근현대에 오면서 남자들의 복식은 양복바지, 점퍼, 스웨터, 와이셔츠 등으로 바뀌었다. 대개 해방 전후로 한복과 양복이 혼용되다가, 1960년대를 전후하여 전면적으로 양복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의 양복이라 함은 정장 양복을 포함한 근대화된 복식을 말한다. 정장 양복은 의례용으로만 입는 것이 아니라, 화이트칼라 계층의 일상복이기도 했다. 업무 외의 경우에도 양복 형식의 옷이나 점퍼, 양복바지를 즐겨 입었다. 여자 복식 또한 해방 전후로 치마, 저고리를 상용하다가 원피스, 투피스, 몸빼 등으로 변화하였다. 이렇듯 자가 제작 중심의 한복 차림이 양장 위주의 평상복으로 바뀐 것은 근대화와 더불어 기성품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복식 제작 및 구입 형태]
전통 시대에는 일상복을 직접 만들거나 복식의 일부를 바느질하는 사람에게 의탁하는 수공업적 형태로 의복을 만들었다면, 근현대에는 공장에서 제작 가공된 복식을 상업적으로 구입해서 착용하는 형태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