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5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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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錦江里堂山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문화유산/무형 유산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금강리 금강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나경수 |
의례 장소 | 당산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금강리 금강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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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마을 공동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1월 14일 |
신당/신체 | 느티나무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금강리 금강 마을에서 매년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영암군 서호면 금강리 금강 마을에서 매년 대보름을 맞아 마을의 평안을 비는 뜻에서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음력 1월 14일 밤 12시경~새벽 3시 사이에 지낸다. 마을 사람들이 제사를 모실 대표자를 선정하고, 비용을 걷어 제물을 장만한다.
[연원 및 변천]
금강리 당산제 의 기원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마을이 형성되고 50여 년이 지난 후에 당산제를 모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당산(堂山)에 숲이 무성했지만 지금은 느티나무 두 그루만 서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당산은 서호면 금강리 금강 마을의 동북쪽에 위치한다. 2013년 현재는 느티나무 두 그루만 지키고 있는데, 느티나무 앞에 돌을 깎아 상석(床石)을 만들어 두었다. 금강 마을에서는 당산신을 당산할머니라고 부른다.
[절차]
금강리 당산제 는 모두 이장이 관장한다. 우선 제사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각 가정 별로 호구전(好逑傳)을 걷는다. 그리고 정월 초에 이장이 제사를 모실 세 사람을 선정하는데, 생기복덕(生氣福德)을 보고 맞지 않으면 선정될 수 없다. 뽑힌 사람들 모두를 제관으로 부르기도 하고, 기능별로 축관·헌관·제관 등으로 나누어 부르기도 한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몸가짐을 조심한다. 대문에는 한지에 금령(禁令)이라고 써서 붙이고 집 주변에는 황토를 깐다.
정초부터 당산제가 끝날 때까지는 마을에서 징소리 등 쇠 소리를 일절 내면 안 된다. 제관들이 당산제를 모시러 가면 나발을 불거나 징으로 신호를 하는데, 이때부터 는 마을 사람들이 바깥출입도 조심해야 한다.
제물은 돼지머리나 소머리·닭·명태 날것·조기·전어·병치·모치·김자반·과일·떡·폿나물·녹두나물·도라지나물·고사리나물 등이다. 메는 바구니에 담고 떡은 시루 채 놓고, 초 두 개를 밝힌다.
유교식 차례에 따라 당산제가 진행되고, 제사 후 소지(燒紙)를 집집마다 하나씩 올리는데, 특별히 부탁한 사람이 있으면 소원을 입으로 빌면서 올려 주기도 한다.
음복 전에 제물 여러 가지를 조금씩 떼어 그릇에 담은 후에 당산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함께 음복을 한다. 상에 올렸던 돼지머리는 땅에 묻고, 조금씩 떼어낸 제물은 당산 주변에 골고루 뿌리는 퇴식을 한다. 퇴식을 하면서 “저건네 김 서방네[3번 반복], 여기 와서 음식 자시고 우리 마을 잡귀 물쳐 가쇼!” 하고 소리를 낸다.
제관들이 당산제를 마치고 마을 회관으로 돌아오면 기다리고 있던 풍물패가 풍물을 울린다. 다음날부터는 마당밟이에 들어간다.
[부대 행사]
제사가 끝난 날 밤에는 당산굿·퇴물굿·샘굿을 하고, 축관·헌관·제관의 집을 돌면서 굿을 쳐 준다. 다음날부터는 각 가정을 돌면서 걸궁[동네에 경비를 쓸 일이 있을 때, 풍물을 치고 재주를 부리며 돈이나 곡식을 구하는 일]을 치고 마당밟이를 한다.
[현황]
금강 마을에서는 당산을 매우 영험하다고 믿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마을에 조씨 순사 한 사람이 당산이 명당이라 하여 묘를 썼다가 집안이 망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다른 마을에서 풍물이 들어올 때도 먼저 당산에게 알림굿을 치지 않으면 크게 피해를 본다. 평소에도 당산에는 소를 매어 놓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