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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인이 책을 읽던 책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775
한자 王仁-冊-冊窟
이칭/별칭 왕인이 책을 읽던 동굴,왕인과 성기동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산18
집필자 정성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4년 - 「왕인이 책을 읽던 책굴」, 영암 문화원에서 발행한 『영암의 전설집』에 「왕인과 성기동」으로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5년 - 「왕인이 책을 읽던 책굴」, 한국 교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백제 왕인 박사 사적 연구』에 수록
관련 지명 왕인 박사 유적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산18지도보기
성격 전설|인물담
주요 등장 인물 왕인|응신 천황|태자 전지
모티프 유형 위인의 학문 탐구|왕명을 받고 길을 떠남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 기슭에 있는 동굴과 왕인에 관련된 이야기.

[개설]

「왕인이 책을 읽던 책굴」은 백제의 학자 왕인이 학문을 연마하던 장소인 자연 동굴과 그 주변에 관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4년 영암 문화원에서 발간한 『영암의 전설집』과 1995년 한국 교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백제 왕인 박사 사적 연구』에 수록된 내용을 재구성하였다.

[내용]

영암군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월출산(月出山)[809m]의 정기를 받아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백제의 학자 왕인(王仁)[?~?]은 일본 아스카[飛鳥] 문화와 나라[奈良] 문화의 성립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왕인은 백제 제14대 근구수왕(近仇首王)[재위 375~384] 때에 지금의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성기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던 왕인은 공부를 방해받지 않기 위해 월출산 문필봉 산기슭에 위치한 석굴에 들어가 학업에 전념했다. 석굴은 폭 2.5m, 길이 7m, 높이 5m 정도의 직사각형 굴이다. 석굴 입구에는 약 2.5m 높이의 석인상이 세워져 있다. 일부에서는 석불(石佛)이라고도 하고 유가(儒家)의 선비상이라고도 하는데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르다. 이 석굴에서 열심히 공부한 왕인은 문장이 뛰어나 18세에 오경 박사(五經博士)에 등용되었다. 왕인이 책을 보던 석굴을 후세 사람들은 ‘책굴(冊屈)’이라고 불렀다.

이 무렵 백제는 고구려의 계속적인 침략으로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제17대 아신왕(阿莘王)[재위 392~405]은 왜(倭)[지금의 일본]와 수교를 맺고 태자 전지(腆支)[백제 제18대 왕, 재위 405~420]를 왜로 보냈다. 왜의 응신 천황(應神天皇)은 왜에 간 지 7년 만에 태자 전지를 고국으로 돌려보내면서 훌륭한 학자를 왜에 보내 줄 것을 청하였다. 이에 아신왕은 높은 학문적 성취를 이룬 학자인 왕인을 왜로 보냈다. 당시 32세이던 왕인은 영암의 상대포에서 배를 타고 왜로 건너갔다고 전해진다.

[모티프 분석]

「왕인이 책을 읽던 책굴」은 ‘위인의 학문 성취’와 ‘왕명으로 길을 떠남’을 주요 모티프로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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