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777 |
---|---|
한자 | 王仁-同門修學-養士齋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산18 |
집필자 | 정성경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4년 - 「왕인이 동문수학하던 양사재」, 영암 문화원에서 발행한 『영암의 전설집』에 수록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5년 - 「왕인이 동문수학하던 양사재」, 한국 교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백제 왕인 박사 사적 연구』에 수록 |
관련 지명 | 왕인 박사 유적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산18 |
성격 | 전설|인물담 |
주요 등장 인물 | 왕인|근구수왕 |
모티프 유형 | 위인의 학문 탐구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에 전해 오는 백제의 왕인 박사와 관련된 유적 이야기.
[개설]
「왕인이 동문수학하던 양사재」는 왕인이 공부하던 양사재의 위치, 왕인의 학문적 성취, 그리고 일본으로 가는 왕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4년 영암 문화원에서 발간한 『영암의 전설집』과 1995년 한국 교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백제 왕인 박사 사적 연구』에 수록된 내용을 재구성하였다.
[내용]
왕인(王仁)[?~?]은 백제 제14대 근구수왕(近仇首王)[재위 375~384] 때에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성기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재주가 많아 주위 사람들의 총애를 받았다.
구림(鳩林) 삼거리에서 월출산(月出山)[809m] 주지봉(朱芝峰)[491m]을 향하여 올라가면 해발 350m 되는 곳에 양사재(養士齋)가 있다. 왕인이 양사재에 입문한 것은 8세 때였다. 왕인은 양사재에서 유학과 경전을 수학하였다. 양사재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에 비해 왕인은 학문에 대한 성취가 뛰어난 편이었으며, 특히 문장이 뛰어나 18세에 오경 박사(五經博士)에 등용되었다.
백제의 제17대 아신왕 때 32세인 왕인은 왜(倭)의 응신 천황(應神天皇)의 초청을 받아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상대포(上台浦)[배첩골]에서 배를 타고 왜로 갔다고 한다. 이때 왕인은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도공(陶工), 야공(冶工), 와공(瓦工) 등 많은 기술자들과 함께 왜로 건너갔다. 왜에 도착한 왕인은 왜인들에게 글을 가르쳐 학문과 인륜의 기초를 세우고 일본 가요를 창시하였으며 기술과 공예를 전수하였다. 이로써 일본에 정치와 경제, 문화, 예술이 꽃피고 아스카 문화에도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모티프 분석]
「왕인이 동문수학하던 양사재」는 ‘위인의 학문 탐구’ 이야기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영특한 왕인이 열심히 학문을 연마하여 높은 성취를 이룬다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