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216 |
---|---|
한자 | 鄭葵陽 |
이칭/별칭 | 숙향(叔向),지수(篪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민욱 |
출생 시기/일시 | 1667년 4월 29일 - 정규양 출생 |
---|---|
몰년 시기/일시 | 1732년 6월 15일 - 정규양 사망 |
출생지 | 정규양 -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 |
수학|강학지 | 옥간정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횡계리 |
묘소|단소 | 정규양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죽전리 |
사당|배향지 | 횡계서당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횡계리 |
사당|배향지 | 옥간정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횡계리 |
사당|배향지 | 모고헌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횡계리 457-3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영일 |
[정의]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개설]
영일 정씨(迎日鄭氏)는 고려 시대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를 지낸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있다. 영일 정씨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가계]
정규양(鄭葵陽)의 자는 숙향(叔向), 호는 지수(篪叟)이며, 1667년(현종 8) 4월 29일 영천시 대전동(大田洞)에서 태어나 1732년(영조 8) 임자년(壬子年) 6월 15일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어모장군(禦侮將軍)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 정안번(鄭安藩)이며, 증조는 부사(府使) 정호인(鄭好仁), 조부는 정시행(鄭時行)이다.
부친은 진사(進士) 정석주(鄭碩冑)이며, 모친은 의성 김씨(義城金氏)로 생원(生員) 김방열(金邦烈)의 딸이다. 부인은 인천 이씨(仁川李氏)로 교관(敎官) 이석복(李碩馥)의 딸이며, 후사(後嗣)가 없어 족제(族弟) 정중록(鄭重祿)의 아들 정일규(鄭一珪)로 뒤를 이었으며, 사위는 조인경(趙麟經)이다.
[활동 사항]
정규양은 어려서부터 모든 경서와 사기를 읽어,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이현일(李玄逸)·윤증(尹拯)·정시한(丁時翰) 등에게 수학하여 학문의 폭을 넓혔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형 정만양(鄭萬陽)과 더불어 보현산 아래 횡계(橫溪)로 들어가 형 정만양과 함께 경사(經史)에서부터 성리학·예학·천문·지리·역학·경제·정치·율려(律呂)·과제(科制) 등에 이르기까지 두루 연구하여 정통하니 사람들은 이들을 정호(程顥)·정이(程頤) 형제와 같다고 하였다.
특히 퇴계학에 몰두하면서 윤증(尹拯)·정제두(鄭齊斗)·정시한(丁時翰)·이형상(李衡祥) 등과 학문에 관한 토론과 서신 왕래가 많았으며, 학파를 초월하여 학문의 진수를 탐구하였다.
학설은 이황(李滉)의 이기이원론을 사상적 핵심으로 삼아 이(理)는 본연이요, 기(氣)는 성절(性節)로서 이는 허무공적(虛無空寂)이 아닌 만물을 생성하는 우주의 근원이요, 기는 칠정(七情)에서 나뉘어 용(用)이 수반되는 기질성(氣質性)으로 분리하니, 이는 곧 주(主)요, 기는 곧 자(資)라 정의하였다.
정규양은 형과 우애가 무척 깊어서 저서를 낼 때도 반드시 이름을 함께 붙여 ‘훈지록고례(壎篪錄攷禮)’[‘훈지’란 형과 동생을 부르는 말]라고 하고 자손에게도 우애를 중히 여길 것을 유언하였다.
정규양은 1714년(숙종 40)에 암행어사의 장계로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학문과 저술]
목판본인 32권 16책의 『훈지양선생문집(壎篪兩先生文集)』과 6권 3책의 속집(續集)이 있다. 『곤지록(困知錄)』의 내외편, 『가례차의(家禮箚疑)』와 『개장비요(改葬備要)』, 『상지록(尙知錄)』, 『모현록(慕賢錄)』, 『심경질의보유(心經質疑補遺)』, 『이기집설(理氣輯說)』, 『계몽해의(啓蒙解疑)』, 『의례편고(疑禮便攷)』, 『치도의설(治道擬說)』, 『산거일기(山居日記)』 등의 저술이 있다.
[묘소]
정규양의 묘소는 영천시 화북면(華北面) 죽전리(竹田里) 용골산(龍骨山)에 있으며, 진양(晉陽) 정종로(鄭宗魯)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영천시 화북면(花北面) 횡계리(橫溪里)에 옥간정(玉磵亭)과 모고헌(慕古軒), 횡계서당(橫溪書堂)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