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2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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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碩臨 |
이칭/별칭 | 여대(汝大),월송재(月松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민욱 |
출생 시기/일시 | 1669년 12월 15일 - 정석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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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21년 - 정석임 사마시에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739년 5월 2일 - 정석임 사망 |
묘소|단소 | 정석임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
사당|배향지 | 용강정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영일 |
저술 | 『월송재집(月松齋集)』 |
[정의]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신.
[개설]
영일 정씨(迎日鄭氏)는 고려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였던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가계]
정석임(鄭碩臨)의 본관은 영일. 자는 여대(汝大), 호는 월송재(月松齋)이며, 1669년(현종 10) 12월 15일에 태어나 1739년(영조 15) 5월 2일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강의(剛義)라는 시호를 받은 정세아(鄭世雅)이며, 증조는 부호군(副護軍) 정수번(鄭守藩), 조부는 정호신(鄭好臣)이다. 부친은 부사과(副司果) 정시우(鄭時羽)이며, 모친은 숙인(淑人) 능주 구씨(綾州具氏)로 구인계(具仁繼)의 딸이다.
부인은 청도 김씨(淸道金氏)로 부사과(副司果) 김문진(金文振)의 딸이며, 슬하에 1남 2녀를 두니 아들은 정중직(鄭重稷)이며, 사위는 이화윤(李華胤)과 전근현(全近玄)이다.
[활동 사항]
정석임은 어릴 때부터 영민하여 4세에 글자를 알았고, 7세에 문장의 뜻을 이해하였으며, 1721년(경종 원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문장과 학행이 세상의 추중함이 되었다.
백형 정석현(鄭碩玄)과 더불어 당시 지역의 큰 선비인 정만양(鄭萬陽)·정규양(鄭葵陽)·이형상(李衡祥)·정중기(鄭重器)·정간(鄭榦)·정제(鄭悌)·조선장(曺善長) 등과 도의(道義)로 사귀었다.
백형이 사당 문 밖에다 따로 집 한 채를 지어 ‘오회당(五懷堂)’이라 이름하였고, 만년에 이르자 공부가 더욱 진전되어 심경(心經) 등을 깊이 깨달았다.
[학문과 저술]
목판본인 3권 1책의 『월송재집(月松齋集)』이 있다.
[묘소]
정석임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紫陽面) 성곡리(聖谷里) 하천(夏泉)에 있으며, 문소(聞韶) 김헌주(金獻周)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紫陽面) 용산리(龍山里)에 용강정(龍崗亭)이 남아있다.